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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첫 주 강릉과 평양에서 남북이 한데 어울렸다. 5일 강릉에서 열린 세계여자아이스하키선수권 예선에서는 남한팀이 북한팀을 3 대 0으로 이겼고, 7일 평양에서 열린 2018 여자아시안컵축구대회 예선에서는 남북이 1 대 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번 남북 스포츠 교류는 만남 자체가 소중했다. 작년 2월 개성공단 폐쇄 후 민간차원의 접촉도 일절 불허되고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2일 한국 여자축구팀이 인도를 10 대 0으로 이기자 김일성경기장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때 관중석의 북한 주민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태극기를 바라보는 장면이 TV로 전달됐다. 3일에는 강릉 경포해변에서 북한 여자선수들이 망중한을 즐기는 장면이 방영됐다. 그리고 5일 평양에선 호텔 측이 남한 선수의 생일 케이크를 준비했다고 한다. 스포츠는 이렇게 사람들을 풋풋하게 만들고 하나로 묶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작년 이맘때라면 남북을 오가는 스포츠 교류는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국제대회라는 이유로 남북 선수들의 왕래를 승인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남북의 선수들이 올라가고 내려오는 국제대회가 이렇게 동시에 열리기가 쉬운 일은 아닌데, 우연하게 교차원정 경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곧 출범할 차기 정부에 남북관계를 복원하라는 역사의 명령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2017 아이스하키 여자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눈길을 끌고 있다. 훈련할 때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있지만 3일 오후 휴식시간을 맞아 강릉 경포해변을 찾은 북한 선수들이 물에 발을 담그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에 앞서 북한 선수들은 한국-슬로베니아전을 참관할 때 콜라를 마시며 또래 선수들과 다름없이 편안하게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북한은 오는 6일 오후 9시 남북 대결을 벌인다. ㅣ연합뉴스

쿠베르탱 남작의 올림픽 창시 정신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스포츠는 사람 사이의 이해와 교류에 큰 몫을 해왔다. 스포츠는 승리를 목표로 하지만 페어 플레이를 통해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4년마다 열리는 하계·동계 올림픽을 비롯해 수많은 스포츠 행사를 통해 세계인들은 지역과 인종, 종교와 문화를 뛰어넘어 어울리고 화해한다.

스포츠가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 간 화해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미·중 ‘핑퐁 외교’다. 1971년 4월 미·중이 핑퐁 외교를 시작하더니, 1972년 2월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고 ‘미·중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 후 미·중관계가 꾸준히 발전하면서, 1979년 1월1일 미·중은 드디어 수교했다. 한·중 수교에도 스포츠가 역할을 했다. 1984년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만난 한국의 안재형과 중국의 자오즈민은 국경과 이념을 넘어 ‘핑퐁 사랑’을 키웠고, 결혼을 했다. 핑퐁 사랑은 1992년 8월 한·중수교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동서독 간에도 스포츠 교류가 통일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56년 동계 올림픽 때 단일팀 성사 후 동서독은 총 6회에 걸쳐 단일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1964년 10월 도쿄 올림픽 때는 파견 선수단이 총 376명으로 일본, 미국, 소련에 이어 4번째로 규모가 컸다. 1972년 동서독은 기본조약 체결 후 1973년 6월에 스포츠 교류 확대를 위한 기본협정을 체결했고, 1989년에는 7개 조항에 걸친 스포츠 교류 의정서도 합의했다. 1990년 10월 동서독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됐는데, 스포츠 교류가 경제 교류·협력 못지않게 통일의 인프라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달 출범할 차기 정부는 남북관계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끌고 가지는 않을 것 같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조치들이 나오겠지만, 대뜸 당국 간 회담부터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화합과 소통의 기능을 갖고 있는 스포츠 교류를 먼저 띄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1929년에 시작된 경평 축구의 전통을 살리고자 서울·평양 축구 경기를 치르고자 노력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불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준비는 많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 정부 출범 후 상징성이 큰 서울·평양 축구 경기를 제안하고, 정부는 그걸 승인하는 식으로 남북관계 복원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도 모양이 좋을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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