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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시인


강화도에는 화가들이 300여명 산다. 서울이나 인천 같은 대도시로의 접근성이 용이하고 자연이나 역사적 배경 같은 작업환경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섬 주민 200여명 중 한 명이 화가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화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할 때가 많다. 내가 아는 화가들의 작업실은 대부분 열악하다. 농부들이 가축을 기르던 건물이나 폐가를 손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실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단열이 잘되지 않아 열손실이 많기 때문에, 전기나 기름 같은 값비싼 연료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한겨울 연탄가스가 스며나오는 작업실 문을 열 때면 나쁜 생각이 먼저 떠올라 겁이 나기도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은 좋겠어요. 공간도 많이 필요 없고 들어가는 재료도 별로 없고, 뭐 종이 하고 연필이나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되잖아요.” 친하게 지내는 동년배 화가의 생활을 걱정하자 그가 농담을 던졌다. 아닌 게 아니라, 그림 그리는 것에 비해 글 쓰는 일이 수월하기도 하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려면 물감을 비롯해 여러 재료와 도구를 사야 한다. 또 작업환경도 제한을 받는다. 외딴곳이나 방음장치가 된 작업장이 아니라면, 조각가는 아무리 창조적인 영감이 떠올라도 한밤중에 돌 쪼는 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글 쓰는 데도 기본적인 비용은 필요하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도 있지만 꼭 구입해야 하는 책들도 있고 취재를 해야 하는 경우 경비도 감안해야 하니까 말이다.


장마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후배 작업실에 들렀을 때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지자체나 정부가 그림을 보관해주는 사업을 해준다면 어떨까. 그림 보관소를 만들고 최소한의 보관료만 받는다면 애써 그린 그림이 상할까 노심초사하는 걱정도 덜 수 있고 그림의 분실 위험도 덜 수 있지 않을까. 비좁은 작업실 구석구석에 쌓아놓은 그림을 맡길 수 있다면 작업장도 넓어질 것이다. 더러 명성이 있는 화가들의 그림이야 화랑에서 관리를 해주기도 하겠지만 당대에 유명세를 떨치는 화가보다는 그렇지 않은 화가가 더 많은 게 현실 아닌가.


화가들은 웬만하면 자기 그림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형편이 좀 나아지면 보관소에 맡겼던 그림을 찾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보관물이 순환되어 여러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보관소가 그림은행 역할도 하고 전시관 기능까지 갖춘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올여름 중국 시안에 있는 산시성 비림(碑林)박물관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비석의 숲’ 비림은 900여년 전 북송 때 당나라 비석들을 옮겨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림에는 한나라 때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집한 작품 2000여점이 있다고 하는데 이 중 1100여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나라 문종 때 114개의 석판에 65만200여자로 새긴 주역, 시경, 예기, 논어, 효경 등 12개의 경전도 볼 수 있었고 왕희지, 안진경, 구양순의 글자가 판각된 비석들도 관람할 수 있었다. 당나라 시대에 기독교가 이미 중국에 전래되었다는 비문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박물관을 돌아보며, 미래를 위해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값어치 있는 것들을 잘 보호한 중국이 몹시 부러웠다.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昆陽面) 흥사리(興士里)에 있는 고려시대 말기의 매향비. (출처; 경향DB)


박물관을 나서며 우리나라에도 56억7000만년 후 강림할 미륵불을 맞을 준비를 하며 만들어 놓은 매향비(埋香碑)가 있다는 사실로 마음을 달래보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 우리 조상들의 통큰 패러다임을 생각하며 허균이 쓴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를 다시 읽었다. ‘불자들은 도솔천으로부터 강림한 미륵불의 법회에 제일 먼저 참석하면 현세와 미래에 영원한 행복을 얻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용화법회에 참석할 준비물로 향목(香木)을 해변에 묻어두었다가 때가 되면 미륵불에게 그 향을 공양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 증거가 바로 매향비이며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사천 매향비, 정주 매향비, 삼일포 매향비 등을 비롯한 다섯 개의 매향비가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미래를 위해 타임캡슐을 만든 적이 있다. 타임캡슐에 실용성을 접목시켜 보면 어떨까. 가령, 수백년 후 훼손된 미술작품을 복원할 때 도움이 될 수 있게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붓이나 물감, 종이 같은 것을 보관해보면 어떨까. 마치 종자은행에서 종자를 보관하는 것처럼.


요즘 MB 독도 친필 표지석과 경북지사 기념비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 비석들은 법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생각해볼 게 분명 더 있다. 비석의 글씨도 그렇다. 꼭 대통령 글씨로 써야 하는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한자를 따오던가, 한글로 하려면 안중근 의사나 김구 선생님의 글씨 또는 조국수호를 위해 몸 바친 선열의 글씨를 집자해서 새기면 안될까. 또 비석을 세우는 주체가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5000만 국민이나 우리 8000만 겨레의 마음다짐으로 하고 이를 대통령이 받들어 표지석을 세운다고 하면 어떨까. 어떤 것이 더 미래를 위하는 것이고 더 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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