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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에 냉이꽃이 피었습니다
냉이꽃 저만치 조그만 돌멩이가 있습니다
돌멩이는 담장 그늘이 외로워서
냉이꽃 곁으로 조금씩 조금씩 굴러오는 중입니다
종달새도 텅 빈 하늘이 외로워서
자꾸 땅으로 내려오는데
그것도 모르는 냉이꽃이
냉이꽃이 종달새를 던지는 봄날입니다
유금옥(195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유금옥 시인의 동시를 좋아한다. 전교생이 열 명 남짓한, 대관령 골짜기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걸작이다. 동시 ‘왕산초등학교’에서 “우리 학교는 산이 있네/ 우리 학교는 책이 많네/ 우리 학교는 놀이터가 있네/ 우리 학교는 새들도 많네// 우리 학교가 지지배배 웃네”라고 썼다.
시 ‘냉이꽃’에도 아이의 맑고 순수한 동심의 나라가 있다. 냉이에게는 흰 꽃들이 잇달아 피었다. 돌멩이는 담장의 그늘에 있으면서 말을 나눌 친구를 아직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 무거운 몸을 굴려 냉이꽃 곁으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가고 있다. 물론 꽤 오래 걸리겠지만. 높은 하늘을 날던 종달새도 혼자 하는 놀이가 심심해서 땅으로 포르릉 날아 내린다. 그러나 냉이꽃은 다가오는 종달새를 봄 하늘로 되던져 돌려보낸다. 종달새는 솟아오르며, 마치 마음에 들지 않아 삐치고 토라진 듯 날아간다.
냉이꽃의 마음이 있고, 돌멩이의 마음이 있고, 종달새의 마음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서로의 마음을 잘 몰라 “그것도 모르는” 일을 하곤 하지만, 이즈음은 외로운 마음들이 한 군데서 만나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려는 봄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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