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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에 종아리를 씻는 소리처럼 새 떼가
날아오른다
새 떼의 종아리에 능선이 걸려 있다
새 떼의 종아리에 찔레꽃이 피어 있다
새 떼가 내 몸을 통과할 때까지
구름은 살냄새를 흘린다
그것도 지나가는 새 떼의 일이라고 믿으니
구름이 내려와 골짜기의 물을 마신다
나는 떨어진 새 떼를 쓸었다
-김경주(197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새 떼가 퍼드덕대며 날아오른다. 대야에 물을 떠 발을 담그고 발과 종아리를 찬물로 씻을 때의 소리를 내면서. (이 이미지의 연결은 참으로 멋지다.) 찰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새 떼가 날아올라 날아간다. 내 몸과 찔레꽃과 능선 위로 날아간다. 구름을 지나가고 사라진다. 골짜기에서 생겨난 구름도 둥둥 떠서 간다. 새 떼는 날아가서 아주 사라지고, 새 떼가 날아갔다는 움직임의 흔적만 남았다. 그 흔적은 낙엽처럼 지상으로 떨어진다. 이 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처럼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해와 짐작은 읽는 사람의 것이다.)
새 떼는 피어오른 구름과 같고, 큰 그릇이나 양동이에 담긴 물과 같다. 아니 새 떼의 움직임은 봄바람과 같고, 수증기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하얀 입김과 같고, 기침과 같고, 글썽임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도 이와 같을 것이다. 불안정한 기류처럼 어떤 일은 발생하고 진행된다. 우리 존재도 이와 같을 것이다. 둥글넓적한 형태로 떠서 다니는, 혹은 무정형으로 떠서 다니는 유동성이 본질일지도 모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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