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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에도 촛불집회가 열렸다. 무려 열여덟 번째 집회다. 만약 이 집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시민이 있다면 지난해 10월29일부터 연달아 열일곱 번의 토요일과 한 번의 공휴일을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 오롯이 공공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데 할애한 거다.       

3·1절엔 서울에 비가 내렸지만 참가자들은 축축한 바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앉았다. 그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여러 일에 밀려 그 날은 건너뛸까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런 시민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그나마 바로 서는 게 아닐까? 이들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산다는 게 고마웠다. 그들에게 내 삶이 빚진 느낌이 들었다.

필자 주변에 첫 번 집회는 정보 부족으로 참가하지 못했지만 그 뒤로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 촛불시민이 한 명 있다.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왜 그렇게 빠지지 않고 나가냐”고. 그가 말했다. “자기 자식에게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도록 해주고 싶어서 그런다”고. 사실 필자도 해외 출장으로 불가피했던 두어 번을 제외하곤 촛불집회에 계속 참가했다. 난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중에 할머니가 되었을 때 손자·손녀에게 할머니도 그때 그곳에 있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고 더 나은 사회에서 그 아이들이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2013년 8월 4대강 사업으로 지어진 영산강 승촌보 인근에 마치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은 녹조가 강을 뒤덮은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늘을 바꾸는 행위는 결국 우리의 미래를 바꾼다. 오늘 우리가 내린 결정과 행동이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환경·에너지 문제야말로 오늘을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원주민(인디언)의 격언에 이런 것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토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여기서 토지란 단순히 토지만이 아니라 지구 또는 자연 전체를 의미한다. 지금처럼 마구 훼손하고 흥청망청 써버리다간 이자는커녕 원금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미래세대에게 빚진 자들이라면, 오늘을 건강하게 살아내려는 자들에게 빚진 느낌을 가진다면, 오늘의 우리 행동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지난 2월 말부터 정부는 4대강 녹조문제를 해결하겠다며 16개 보(사실상 댐)의 수문을 시범적으로 열고 있다. 4대강 건설 이후 처음으로 드러난 강바닥은 참혹할 정도로 오염되고 파괴된 모습이다. 소위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언어도단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유구한 시간 동안 건강하게 흘러온 생명의 보고, 미래세대의 강을 무참히 파괴한 것이다. 그런 사실이 이미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추가 유지비로 2조5000억원을 썼을 뿐 제대로 된 문제해결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지난 2월7일엔 월성 1호기 수명연장 무효 국민소송에 대해 재가동 승인이 잘못되었다며 취소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피고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곧바로 항소했고 원고 측인 국민소송단도 취소가 아닌 무효가 되어야 한다며 항소한 상태다. 이 와중에 설계수명이 이미 종료된 월성 1호기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가동 중에 있다. 게다가 각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고는 2019년 월성 원전을 시작으로 가까운 미래에 포화될 전망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둘러싼 갈등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4대강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으면, 원전의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란 없다. 삶의 터전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때 어떤 가치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미래세대에게 우리가 빚진 자들이라면, 단기적인 불완전한 경제성보다는 안전과 책임, 생명과 윤리가 그 기준이 되어야 옳다. 비에 젖은 찬 바닥을 마다하지 않는 시민들은 바로 이런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믿지 않을까?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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