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현재의 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기억하는 걸 진실이라고 믿는다. 실험에 의하면 동일한 사건을 겪더라도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기억을 환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억을 믿지 않으면 찾아올 정체성의 위기는 감당하기 어렵다. 뒤틀리고 어긋난 기억이라도 맞겠거니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자신에게는 이롭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에 대한 끊임없는 합리화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억은 이렇듯 불안정하다.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개인에게뿐 아니라 사회집단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사건과 현상은 동일한데 이를 서로 달리 기억하는 집단이 생겨난다.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 자신들의 기억을 더욱 진실로 확신하게 된다. 서로 다른 기억 집단들 사이의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그 서로 다른 기억들이 오늘 부딪치고 있다.
역사는 사회가 공유하는 집단의 기억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을 모아 역사가 된다면 그 역사는 모두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완벽하게 공유된 역사의 기억은 없다. 있다면 그게 더 끔찍하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다르듯이 역사에 대한 기억 역시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나에게 역사적으로 옳은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역사가 서로 다른 모든 기억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회집단이 공유하는 역사는 그 사회의 정체성과 정당성에 동의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기억이 아무 근거 없이 마구 흔들릴 수는 없다. 기억을 흔들려는 주체들은 대개 그 사회의 패권을 잡은 집단들이다. 그들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 공동체가 지향하는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그들은 모두가 공유한 기억을 조작하려 한다. 바로 역사 왜곡을 통해 기억을 왜곡시키려는 것이다. 오래돼 가물가물한 역사뿐 아니라 누구나 기억하는 현재와 가까운 과거조차 왜곡이 이루어진다. 그게 핵심이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독재자의 후계자들이 사회가 공유한 과거의 기억에 손을 대려는 이유는 자명하다. 사회적으로 공유된 기억 속에 자신이 속한 과거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의 기억과 공동체의 기억이 분리되는 순간, 현재 자신들의 정체성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선점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역사 속의 과거는 속절없이 현재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다. 모든 식민지 전쟁이 그렇듯이 거기에는 왜곡, 기만, 회유, 과장의 전략이 채택될 것이다. 과거를 현재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파견된 선교사들은 현재의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기억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가 또 다른 과거로 전락할 순간, 폐기될 역사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기억될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가 미심쩍더라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또 다른 역사가 준비되어 있다. 바로 개인으로서의 역사이다. 사실 기억의 주체는 집단이나 사회가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이다. 그리고 과거를 기억하는 모든 개인은 개인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다. 나에게 일어난 지극히 은밀한 사건조차 기억하는 건 나이지만 그 사건의 상황을 만들어낸 건 언제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기록하는 것은 나의 기록이자 동시에 사회에 대한 기록이며 바로 모두가 공유하게 될 역사의 기억이다. 개인으로서의 역사는 집단의 기억 이전의 기억이다. 그 기억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는 역사를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개인의 역사는 집단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와 삶]죽은 천경자와 남겨진 그림들 (0) | 2015.11.11 |
---|---|
아이유와 국정교과서 (0) | 2015.11.09 |
‘쇼팽 콩쿠르’ 우승 조성진, 성공한 걸까? (0) | 2015.10.28 |
[문화와 삶]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정부 (0) | 2015.10.14 |
문학의 역사 (0) | 2015.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