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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는 “절실한 것이 호소력을 갖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미술 사조와 유행이 흘러갔지만 나 자신은 그런 것을 한 번도 따른 일 없이 내 자신의 세계를 추구해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1970년대 천경자의 여인상, 1980년대 박생광의 불화, 민화 등에 기반을 둔 채색화가 나올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기회주의적 변신을 거듭하면서 살아남은 대다수 작가들은 당대에는 무척 잘 나가는 것 같았지만 사후 그들의 작품은 초라하고 시들하기만 하다. 이른바 영성적인 색채와 이미지의 주술성을 지닌 천경자의 그림은 무엇보다도 자전적인 동시에 한국인의 보편적인 문화와 정서를 대변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과 자의식의 산물인 천경자의 색은 자신의 감정과 심리의 등가물로 착색된다. 이것이 한국 채색화의 현대성이다. 장식이나 종교적 이미지에 국한되었던 색의 세계가 비로소 자아의 대리물로 빚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색은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성(햅틱)을 지닌다. 그림이란 눈(目)적인 것과 손(手)적인 것의 혼합이며 시각과 촉각의 혼합이다.
천경자는 기존의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꽃 그림이나 여인상 혹은 창백한 소재주의로만 일관한 채색화와는 전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니까 진부한 상투성과 예측 가능한 개연성을 지닌 구상화와는 달리 오로지 자신이 창조해낸 형상을 추구했다. 자신의 분신인 여인, 그리고 그를 감싸고 있는 뱀과 꽃을 그렸다.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는 자화상의 변주다. 얼굴과 목이 길고 쌍꺼풀 없이 찢어진 가느다란 두 눈에 초점을 잃은 듯한 눈동자, 그리고 머리에 꽃이나 뱀을 이고 있는 여자들은 한결같이 고독하고 처량하며 깊은 우수에 젖어 있다. 고독하면서도 자존심 강한 한 여자의 삶을 대변하는 천경자의 얼굴은 현대 미술이 저버린 서사의 의미를 회복시켰다. 동시에 미술이 한 개인의 자전적 삶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천경자 그림 속의 여자들은 권진규의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결정적인 얼굴 하나를 우아하고 매혹적으로 안겨주었다. 또한 이집트 조각의 정면성이 암시하는 불멸의 존재성 역시 강하게 환기시킨다.
한편 천경자의 그림에 등장하는 뱀이나 마녀적 이미지는 모두 어두운 현실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키는 수호신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부적과 같은 것이다. 그녀들은 단지 남자의 시선 아래 종속된 수동적 존재, 미인에 불과하지 않다. 또한 그림에 등장하는 꽃은 계절의 변화나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표현하며, 무엇보다 생의 기쁨이나 죽음의 세계를 상징한다. 작가에게 꽃이란 ‘그 자체가 색채의 파티’이다. 그의 작품에서 색채는 내적 표현의 결정체이며 자연과 사물의 조화를 담는 영혼으로 해석된다.
바로 그 점이 돋보였다. 이처럼 천경자의 그림은 대상의 외형에 근거한 정교한 재현적 채색 방식에서 완연히 벗어나 색채에 자신의 주관적 정서를 강하게 투사했다. 특히나 대상을 드러내는 묘선이 색채에 파묻히고 부드럽고 화사한 색층이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점이 매력적이다. 색을 입히고 다시 호분을 덮고 그 위에 또 색을 시술하는 방법에 의해 색층이 두꺼워지면서 안에서부터 우러나는 색의 뉘앙스가 무척 풍요롭다는 얘기다.
그로 인해 수성으로 그리지만 마치 유화 느낌도 들고, 무수한 붓의 중첩에 의해서 밑으로부터 은은하게 차오르는 중간색의 미묘한 색감이 모호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전통 동양화의 채색 재료를 새롭게 구사하면서 자신의 섬세한 감정을 신비롭고 미묘한 색감으로 우려내는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형태뿐만 아니라 색채 자체가 발하는 심리적 아우라(aura)를 강하게 표출한 그림이 되었는데, 바로 이 점이 천경자의 채색화가 만든 성과이다.
천경자 '여인'_경향DB
꽃과 여인의 초상으로 대변되는 천경자의 독창적 예술 세계가 만들어지는 시기는 1960~1970년대이다. 화단으로부터의 소외와 가난, 불우한 가족사, 복잡한 개인사가 마구 맞물려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바로 그 시기에 그려진 천경자의 그림만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천경자는 자전적 요소와 상징성을 교묘하게 결합한 형상과 모티프로 그림을 만들었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닌 개성적인 화풍을 구현했다. 대중에게 친숙한 상징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는 현실을 연극으로 치환해 보이는 모종의 환상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일관된 주제는 이른바 ‘꿈과 정한(情恨)’의 세계였다. 자신의 꿈과 낭만을 실현하려는 의도로 꽃과 여인을 소재로 자신의 환상을 펼치고 있는 그림이다.
따라서 천경자의 환상은 자의식과 예술혼을 지키고 강화하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 그림은 ‘환상의 물화 과정’이라고 불린다. 그런 의미에서 천경자의 그림은 하나의 영매로서 기능하고, 따라서 그녀는 스스로 무당이 된다. 당연히 그녀의 그림, 색채는 주술성으로 충만하다.
한국 채색화 영역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보여주었던 천경자가 얼마 전 죽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죽음을 함께하지 못했다. 기이하고 의아한 죽음이다. 그의 죽음을 접한 한국 화단은 유족의 황당한 처신과 오래전의 위작 시비에만 사로잡혀 있다.
천경자 작품의 진정한 의미와 그녀의 화가로서의 삶에 대한 논의는 부재하다. 오늘날 수많은 채색화가와 여성작가들이 버글거리지만 천경자만큼이나 지독하고 ‘징한’ 그림, 자의식으로 충만하면서도 채색의 우아한 경지를 매혹적으로 안겨주는 그림을 찾기는 쉽지 않다. 화단의 주류언어에 기대지 않고 서구식의 새로운 미술만을 추구하는 데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오직 자신의 삶과 감각에 기대어 그 무엇인가를 길어 올리려 애쓰던 작가의 모습은 오늘날 더 이상 이곳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이 되었다. 그녀의 죽음이 안타깝고 슬픈 이유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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