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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정치인들을 분류한다면, ‘반인권’, ‘비겁’, ‘용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얘기다. 세계적으로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동성결혼 또는 그에 준하는 시민결합(civil union)을 인정한 국가의 숫자가 35개국을 넘어서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경우 동성결혼 법제화는커녕 차별금지법 제정조차도 막혀 있다.

바로 ‘혐오’와 ‘비겁’의 정치 때문이다. 김무성, 박영선 같은 유력 정치인들은 지난 4·13 총선 당시 성소수자에 대해 노골적인 혐오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혐오발언을 하지 않더라도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보인 정치인들도 많았다. 19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국회의원들이 법안발의를 스스로 철회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런 식의 정치로 인해 성소수자들의 인권은 더욱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정치인이라면, 이런 인권이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뉴스를 검색해보면,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 대부분은 성소수자 인권문제나 동성결혼 같은 이슈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 이런 침묵은 비겁함의 표현일 뿐이다.

그나마 이 문제와 관련해서 발언한 적이 있는 사람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반 사무총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동성결혼 법제화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왔다. 그러나 정작 지난 5월 국내에 들어왔을 때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하지 않았다. 침묵은 곧 비겁함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구나 그를 대권후보로 영입하겠다는 쪽은 ‘반인권’으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이 많은 집단이다. 그가 대권에 눈이 멀어 ‘비겁’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해 6월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이준헌 기자

가장 많은 논란에 휩싸여 있는 사람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그는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퀴어퍼레이드 때 서울광장을 사용하게 해 줬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고 있고, 인권단체로부터는 2014년 시민들이 참여해서 만든 서울시민인권헌장 공포를 포기한 것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인권변호사였다는 정치인이 이런 문제로 갈팡질팡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명확하게 인권의 편에 서는 것이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서 대권을 꿈꾼다는 분들에게 영화 한 편을 권하고자 한다. 바로 <로렐>이다. <로렐>은 비겁한 정치에 맞서 평등을 이끌어낸 사람들의 얘기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로렐>의 주인공은 미국 뉴저지주 오션카운티의 여성경찰관 ‘로렐’과 그의 동성파트너 ‘스테이시’이다.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이들의 일상은 로렐이 말기암 판정을 받으면서 깨진다.

23년 동안 경찰관으로 일했던 로렐은 자신의 동성파트너가 자신의 연금을 승계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지방의회에 청원한다. 그래야만 대출로 장만한 집에서 파트너가 계속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렐이 속해있는 오션카운티의 지방의원들은 ‘반인권’이거나 ‘비겁’에 속하는 부류들이었다. 의회는 로렐의 청원을 거부했다.

그러자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 인권활동가들과 주민들, 나중에는 동료 경찰관들까지 나선다. 인권활동가가 의원들 앞에서 외치는 구호는 “당신들에게 힘이 있다(You Have The Power)”라는 것이다. 힘을 얻기 위해 정치를 하는 이들이 ‘나는 결정권이 없다’며 비겁하게 회피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영화 <로렐>의 한 장면

그러나 그나마 로렐의 얘기에 공감하는 의원조차도 다음 선거를 걱정하며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다. 죽음을 앞둔 로렐은 이런 지방의원들 앞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평등한 대우”라고 말한다. 결국 ‘비겁’에 속하던 의원들이 동성파트너에게도 연금이 승계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로렐이 죽은 후, 그녀가 주장했던 ‘평등’은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인정하면서 미국에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로렐이 외친 평등은 어느 곳에서나 필요하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은 입법되어야 한다. 이것은 유엔인권이사회가 권고해 온 사항이다. 동성커플들이 실제로는 가족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법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 같은 나라도 동성결혼을 법제화했다. 합리적인 문명국가라면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

부디 내년 대선에서는 대선후보들의 ‘비겁함’이 대한민국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는 지지(찬성)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기를 바란다. 타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은 인정과 존중의 대상일 뿐, 지지나 반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대권을 꿈꾼다면 <로렐>을 보기 바란다. <로렐>을 보고, 평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아서 볼 수도 있고, 주변 측근들과 ‘공동체 상영’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힘을 가지려 하기 이전에, 용기부터 가지기를 권한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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