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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차라리 동물국회가 낫겠다”는 발언을 했다. 동물국회와 대비되는 표현은 식물국회이다. 식물국회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국회라는 의미이고, 동물국회는 몸싸움이 좀 난무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수파가 안건을 강행통과시킬 수 있는 국회를 말한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표현 자체가 불편하다. 식물은 아무것도 안 하는 존재가 아니다.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한가? 그런 식물을 아무것도 못한다는 의미로 쓰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 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김정근 기자

동물국회도 마찬가지이다. 동물은 늘 싸우고 폭력적인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동물국회라는 표현도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정치인이라면, 좀 더 생명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표현상의 문제를 떠나서, 지금 국회의 문제를 국회선진화법 탓으로 돌리는 것이 옳을까? 물론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국회를 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해법을 ‘국회선진화법’ 탓으로 돌리면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합의해 줄 가능성이 있을까?

국회선진화법의 핵심은 안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려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할 수 있는 요건을 엄격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 국회 내에서 소수파로 전락했고 국회의장 자리도 잃은 새누리당이 이런 조항을 포기할 리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박지원 원내대표의 발언은 표현도 적절치 않고, 내용도 현명하지 못하다. 길이 없을 때 길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지난 19대 국회 막바지에 국회법을 어겨가면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던 정의화 의장과 새누리당을 닮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권력과 여당을 압박하는 야당다운 모습이 필요하다. 최소한 야당들이 한입으로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 개정 같은 사안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두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그것이 총선에서 야당에 표를 줬던 유권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다른 한편 현재와 같은 국회시스템으로는 현안을 푸는 데도 한계가 있고, 지금의 시대에 필요한 의제들을 논의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양당제(two party system)이다. 지금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라는 거대 야당이 2개 있지만, 이 두 정당이 정체성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정당이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대한민국은 양당제이다.

이 양당제는 정치에서 논의되는 의제를 좁히고, 소모적이고 불안정한 정치를 만든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퇴임연설에서 ‘두 정파가 서로 번갈아 권력을 잡는 것은 그 자체가 무서운 독재’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금의 미국 양당제, 그리고 대한민국의 양당제를 보면 조지 워싱턴의 경고가 맞는 것 같다.

흔히 양당제의 장점으로 얘기되던 ‘정치가 안정된다’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 대표적인 양당제 국가인 미국의 정치가 안정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처럼 막말을 일삼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이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정치를 안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양당제가 안정적’이라는 허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의 상황을 봐도, 식물국회니 동물국회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지금의 시스템을 두고 ‘정치가 안정적이어서 좋다’는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처럼 시급하게 논의되고 통과되어야 할 법안은 가로막혀 있고, 사드배치 같은 중요한 현안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국회가 어떻게 평화롭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미국과 대한민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은 단지 양당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강력한 대통령제가 가진 문제로 볼 수도 있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여당, 그리고 대통령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야당들의 대리전이 국회에서 벌어지는 면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승자독식의 시스템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철면피’ 정치가 벌어지고, 그 와중에 유권자는 온데간데없게 되는 것이다.

세계은행에서 발표하는 정치안정지수(Political Stability Index)에서 안정성이 높은 국가들은 대체로 다당제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비례성이 강한(정당득표율과 의석수가 일치하는)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또한 정부형태도 미국이나 대한민국 같은 강력한 대통령제가 아니라,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가진 나라들이 많다. 2014년 발표된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191개국 중에 84위, 미국은 60위에 그쳤다. 물론 국가별로 특수성이 있으므로 단순히 이런 지수 하나로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면 이제는 교훈을 얻을 때가 되었다. 양당제-대통령제와 다당제-의원내각제 중에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만 뒷받침한다면, 다당제-의원내각제가 더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정치를 만든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스템을 바꾸려면, 이렇게 근본적으로 바꿔야지 국회법 조항 몇 개 고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원내야당들은 당장의 현안을 시스템 탓으로 돌리는 비겁함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당장의 현안을 돌파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시스템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하승수 |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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