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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 귀농본부 텃밭보급소장


바나나에 원래 팥만한 까만 씨가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지금 먹는 바나나는 씨 흔적만 남은 불임 바나나이다. 종류도 단순화된 데다 씨앗이 없으니 접목을 통해서만 번식이 된다. 문제는 이를 공격하는 강력한 세균이 나타났는데 막을 방법이 없다. 현재 기술로는 10년 안에 개발하기 힘들다. 바나나가 멸종한다는 얘기다. 씨가 있는 바나나가 원래처럼 다양하게 존재했다면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었을 것을.

1950년대 정부에서 광교라는 다수확 콩 종자를 육종해 전국에 보급한 적이 있다. 다수확에다 모자익바이러스에 강하다는 이유로 기존의 다양한 콩 종자들은 퇴출되고 광교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광교는 괴저바이러스에 무참히 쓰러져 나갔다. 광교는 3년 만에 사라지고 말았고 급기야 콩 수확량은 최저로 급감하고 말았다. 다양한 재래종 콩을 재배했더라면 비록 병에 걸리더라도 종이 전멸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화분으로 사용가능한 용기에 방울토마토와 씨앗이 담겨있는 토마토화분팩을 사는 고객 ㅣ 출처:경향DB

단일 품종을 대량 재배하는 단작 농사는 종자를 단순화한다. 다수확이 되고 돈벌이가 되는 종자 외에는 퇴출되고 만다. 그렇게 단순화된 종자에 치명적인 병충해가 생기거나 사회적인 혼란이 생기면 결국엔 그 종자마저 사라지고 만다. 종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먹을 근본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콩과 밀을 주식으로 100% 자급농사를 하며 평화롭게 살던 레바논은 100년 전 프랑스에 식민화된 후 콩과 밀 대신 강제로 누에 농사를 짓게 되었다. 비단을 프랑스에 팔아 콩과 밀을 수입해 먹고살았는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무역체제가 붕괴되니 비단을 팔 길이 막혔다. 갑자기 닥친 상황에 전 국민이 굶어 죽게 생겼다. 결국 인구의 3분의 1이 난민 신세가 되었다.

자유무역협정(FTA)은 단작 농사를 부추긴다.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경쟁력 있는 농사만이 남게 되고 그 외에는 퇴출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경쟁력 있는 농사는 손꼽기조차 민망하다. 지금 씨가 마른 자리에서 무엇이 돋는가 보라. 정체불명의 것들만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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