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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턴테이블이라고 할까? 아님 LP의 부활? 여하튼 LP 레코드와 턴테이블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 ‘뉴욕타임스’조차 관련 기사를 낸 걸 보면 그게 전 세계적인 분위기인 듯.
국내에서는 정확히 아이유를 시작으로 에피톤프로젝트, 김동률, 버스커버스커, 인피니트, 혁오, 브라운아이드소울과 나얼 등 젊은 가수들이 제작한 한정판 LP 앨범이 발매되자 10대들까지 LP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고가의 턴테이블 대신 LP 음악을 MP3 파일로 변환하는 기능까지 갖춘 휴대용 LP 플레이어 시장이 커졌고, 홍대와 강남, 이태원 등지의 LP바를 찾는 이들도 요즘 부쩍 많아졌다.
그 때문이겠지만 참 발 빠르다. 지난 5월 이태원에 뮤직라이브러리를 개관한 현대카드 말이다. 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LP 음반 1만여장을 보유한 채 방문객 누구나 직접 LP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꾸몄다고 하는데 역시 단박에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는 소식이다.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LP로 음악 듣는 재미에 대해서라면 나도 좀 안다. 무손실이든 고음질이든 여하튼 인터넷에 접속해서 쉽게 듣는 음악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LP판을 뒤적여 한 장 골라내고, 디스크를 꺼내 입으로 먼지를 후-우 불어 날린 후 살며시 트랙에 바늘을 내려놓는 재미. 턴테이블이 회전하고 아슬아슬하게 카트리지가 디스크 위를 스케이팅하면 아날로그 특유의 미세한 잡음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다. 바로 그 순간의 느낌.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인 그 느낌.
LK:강렬한 레드 컬러가 돋보이는 CD 플레이어 겸용 턴테이블_경향DB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음원사이트에 접속하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대에 LP로 음악 듣기란 얼마나 번거롭고 수고스러운가? 듣고 싶은 LP 한 장 골라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 게다가 그 한 장 한 장이 다 돈이다. 장르별로, 아티스트별로 잘 엄선된 고음질 음악 파일을 공짜로 수천곡씩 다운로드해 놓고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재생할 수 있는 시대에 LP도 턴테이블도 앰프도 스피커도, 심지어 바늘조차도 너무너무 돈이 많이 든다. 돈뿐 아니라 공간도, 시간도 많이 차지한다. 설사 돈이 많아도 마음의 여유는 물론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호사 취미. 예컨대 스티브 잡스에게나 어울리는 오만한 사치.
그렇다.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선구자였지만 집에 돌아가면 LP판으로 음악을 듣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닐 영의 지적처럼 디지털로 구현되는 음악이 질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공짜로 공유할 수 있는 음악 파일 때문에 음악 산업이 무너졌지만 덕분에 돈 한 푼 없는 사람들도 수준 높은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런 점에서 음악이 돈 되는 산업에서 인류를 위한 축복으로 기꺼이 내려앉은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잡스는 뿌듯했을 거다. 하지만 아날로그적 소리의 질감, LP판 그 자체의 존재감, 그리고 판을 트는 수고롭지만 우아한 행위의 즐거움 때문에 본인은 집에서 LP를 틀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나저나 소니가 1979년 처음 선을 보였던 워크맨처럼 걸으면서도 들을 수 있는 LP 플레이어가 곧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Rocket&Wink라는 디자인 그룹이 만들고 있는 ‘물건’이라 그런지 디자인이 출중하게 복고적이면서도 산뜻하다. 물론 존재감 큰 ‘물건’과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지만….
그보다는 나는 플로팅 레코드(Floating Record)에 베팅하겠다. 일반 플레이어와 달리 LP판을 세로 방향으로 세워서 재생하는 턴테이블이어서 마치 레코드판이 공중부양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인테리어 효과가 굉장하다. 참고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자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분은 참여해 보실 것.
돌아온 LP 시대를 맞아 나도 모처럼 사고 싶은 것이 생겼다. 43년 만에 LP로 복각된 조용필의 진정한 데뷔 앨범. 1972년에 발표된 <스테레오 힛트 앨범>이라는 제목으로 무명 밴드에서 활동하다 막 데뷔한 스물두 살의 어리디 어린 조용필을 만날 수 있는 진귀한 앨범이다. LP로 재발매된 김현철 1집과 이소라 1집, 김광석 4집도 사고 싶다. 김광석 4집 LP는 희귀할뿐더러 찾는 사람도 많아서 50만원을 호가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4만원이면 살 수 있게 됐다. 아, 좋구나. 돈은 좀 들겠지만…. 그렇다. LP엔 ‘음악을 통한 시간의 감촉’뿐만 아니라 고고한 ‘돈의 감촉’마저 담겨 있다는 사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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