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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남북정상회담 이래 한반도 평화 프로그램은 일사천리로 전개되어왔다. 정말로 파격에 이은 파격이다. 남북 정상의 만남은 형제 같고, 옛 동무끼리의 만남같이 ‘순수하고 솔직한’ 만남이었다.

그런데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회담도 그럴까? 김정은 위원장은 여전히 천진하다고 보일 만큼 겁없고 담대한 행보를 하지만, 과연 국익을 놓고 권모술수와 기만, 그리고 협박과 허장성세가 판치는 국제정치의 마당에서 통할까? 게다가 인종주의적이고 여성차별적인 ‘장사꾼’ 트럼프 대통령을 믿어도 될는지 걱정이다. 북에서 다 내려놓고, 핵·미사일 없는 발가벗은 맨몸이 된 다음에 미국이 이빨을 드러내면 어떻게 될까?

중재자이자 보증인을 자처하는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 주변 뉴라이트들의 사악한 속임수를 막아내고 한반도 평화를 담보해낼 수 있을까? 한국에는 이미 몸을 던져서 담보해야 하는 책임이 생긴 것이 아닌가?

지난 칼럼에서 말했지만, 일본은 대북 압력정책의 맨 앞장을 서서 제재에 의한 북한의 붕괴를 바랐는데, 남북정상회담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일본이 오히려 ‘모기장 밖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일본 패싱’의 위기에 봉착한 아베 정권은 한반도 문제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몸이 달았으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몽니를 부릴 수 있는 기회가 없을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나는 외교·안전보장 문제를 국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강정해군기지 문제나 소성리 사드 설치에서 주민들의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주민의 안전보장’ ‘민중의 안전보장’이 실현되어야 하고, 서로 신뢰하고 선제 양보로 이어지는 포용적인 ‘윈윈’ 외교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물론 19세기 이래 적십자운동처럼 분쟁 완화 또는 갈등 해소를 위한 인도주의적 민간인 활동이 있어왔다. 국권(또는 국가)주의적 역사인식을 넘어 참된 상호이해나 상생·화해의 길도 있다. 그중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연행,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등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장에 다가서는 시민교류나 연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데에서 공통의 역사인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소통 내지는 역사인식의 접근이 어려울 때는, 정부 차원의 외교가 있더라도 민간 차원에서 교류·소통에 한층 힘을 써야 한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물론 일본 사회 전체의 정서가 반한 무드에 휩싸여 더욱더 멀어지는 한·일관계를 타개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한·일 시민교류의 사례를 소개하겠다.

지난 4월26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리기 위한 윤봉길 평화축제 참가차 가나자와(金澤)의 방문단 20명이 서울에 왔다. 이들은 주로 일본 사람으로 구성된 ‘윤봉길과 함께하는 모임’과 재일동포로 구성된 ‘월진회’ 일본지부 성원들인데, 그 중심의 일본인은 사민당 소속인 이시카와현의회 의원, 가나자와시의회 의원, 하쿠산시의회 의원과 대학교수, 중·고등학교 교사들과 노조원들이다.

월진회 일본지부는 윤 의사가 일찍이 1929년에 예산에서 만든 농민운동단체의 후신으로, 일본지부는 주로 암장지에서 윤 의사 유해를 발굴, 송환하고 암장지를 보존해온 재일동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그들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주최한 독립운동 사적지 답사를 따라갔을 때였다. 그 후 몇 차례 강연이나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기도 하고 몽골이나 하얼빈 기행도 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윤 의사는 1932년 4월29일, 상하이의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천장절(天長節·일왕 생일)의 축하회장 단상에 폭탄을 투척하여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다 거류민단장을 사망케 하고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 중장, 우에다 9사단장, 시게미쓰 주상하이 공사(후에 외무대신), 무라이 총영사, 도모노 거류민단 서기장 등에게 중상을 입히는 항일투쟁을 감행했다. 윤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5월25일 상하이 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오사카를 거쳐 11월19일 9사단 본부가 있는 가나자와에서 오전 7시40분쯤 눈을 가리고 이마에는 일장기와 같은 표적을 그린 머리띠를 두른 채 앉은 자세로 십자가에 묶여 총살당했다.

잔인하다!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잔인무도한 처형이다. 시신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가나자와 노다야마 육군묘지의 좁은 통로 밑에 암장되었다.

윤 의사의 의거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격살 못지않게 일제를 전율케 한 큰 사건이다. 일본인의 눈으로 보면 아주 중대한 테러범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런데 해방 직후에 시신을 발굴하여 본국에 송환한 재일동포들은 그렇다 쳐도, 1995년 시작하여 2005년 전후에 ‘윤봉길 의사와 함께하는 모임’으로 개명하고, 일본에서 반한·반조선의 헤이트 스피치(민족증오 선동)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매국노’라는 매도를 받으면서도 윤 의사 유적지 보존사업과 기념사업, 출판과 심포지엄·전시회 개최, 윤 의사 고향인 예산과 교류를 하며 사업을 꾸준히 이어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방문단 단장으로 독일사 전공자인 다무라 호쿠리쿠대학 명예교수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가해를 한국인의 입장에 서서 사실대로 인식해야 참된 한·일 연대의 길이 열린다”고 한다. 과거청산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옛날에도 조선인과 일본인이 손잡고 반제국주의 투쟁에 나선 일이 많다.

물론 이와 같은 역사인식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북한위협론을 부추기면서 안보를 위한 한·일 공조를 주장한다든지, 역사의 본질을 똑바로 보지 않고 호도하려는데 한·일관계 개선을 이유로 일본을 편들 수는 없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공동번영의 의지를 깔면서도 속임수를 쓰지 않고 솔직·담백한 대화를 통해 정도를 가야 할 것이다. 아베의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평화창조를 위한 협력자로 인식되지 않고 방해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과의 연대 문제에 손을 놓고 때만 기다릴 것인가? 참된 상호이해와 협력을 위해 자그마한 일에서라도 꾸준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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