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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네 명의 청춘이 가슴 벅차 하고 있었다. 3800㎞의 남아프리카를 종단하는 11일간의 자동차 여행, 주인공은 24세 박보검, 27세 고경표, 31세 동갑 안재홍과 류준열이었다. 최근 종영된 tvN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이야기다.

출연료 받고 비행기 타고 아프리카에 가서 많은 스태프가 보는 가운데 배낭여행 방송을 찍었으니 또래는 물론 아줌마·아저씨 시청자도 부럽기 짝이 없다. <응답하라 1988>로 막 스타가 되고 선물 같은 해외여행까지 마치고 귀국하면 매니저와 팬들과 빼곡한 일정이 기다리니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그들은 여행 내내 활짝 웃거나 울컥하면서 “감사하다”를 연발했다. 툭하면 “감사하다”를 격하게 합창하는 네 명의 청춘이 나오는 TV 앞에서 나는 ‘심쿵’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 것은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에 펼쳐진 모래언덕과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가르는 빅토리아 폭포의 경이로운 화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디션 천 번 보자”며 별별 알바를 전전한 류준열처럼 바닥에서 인기 배우에 오른 그들 청춘의 눈빛과 고백 때문이었다. “나도 후회 없이 사는 청춘이고 싶다”고 평범한 욕망을 드러낸 박보검과 “(빅토리아 폭포) 이걸 같이 봤으니 영원히 남는 거야”라며 흥분한 안재홍에 이은 고경표의 말이 압권이었다. “(나는) 많이 흔들리는 사람인데 (이번 여행으로) 내진 설계가 됐다”며 앞으로는 숱하게 “흔들려도 무너지진 않을 것 같다”는 앳되고 떨리는 그의 목소리는 가장 심쿵했고 짠했다.

짠한 것은 그들이 각자 경비로 받은 게 하필 88만원인 것과도 무관치 않았다. 9년 전 <88만원 세대>는 대졸자 비정규직 20대의 월 평균소득을 88만원으로 정리하며 짱돌을 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월 88만원의 청년은 일본 시코쿠 섬의 행자처럼 스펙 쌓기와 멘토 찾기의 미로 속에서 88개 사찰을 순례하는 저마다의 ‘88난민’이 되어 있다. 이제는 모 금융회사의 사외이사들이 받은 작년 평균 시급 88만원과 극단의 합을 이룬 청년의 월 88만원은 그 얇은 생존의 실감마저 놓아버린다. 그런 88만원을 들고 남아프리카 11일 여정의 종착점에서 “사랑합니다! 사랑하세요!”를 외치고 번지 점프를 하는 청춘 류준열의 빛나는 하강을 지켜보자니 심쿵하고 짠하면서 확 깼다.


그렇게 가슴 벅찬 거기 그들처럼 지금 여기 청년들도 “후회 없이 사는 청춘”이 되려면 어디서 길을 찾아야 할까. “많이 흔들리는” 청년이고 “오디션 천 번”의 현실이지만 “무너지진 않을” 청춘으로 단련되는 “내진 설계”를 갖추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유명인이 안되어도 방송에 나오지 않아도 남아프리카 거기가 아니어도 서너 명의 청년들이 뭉쳐서 그런 11일을 보낼 수만 있다면 가슴 벅찬 청춘을 경험하지 못할 청년이 과연 있을까. 문제는 그럴 수 있는 돈과 시간이다.

청년의 월 88만원에 모 사외이사의 시급 88만원(남아프리카에 가는 항공료의 절반 수준)을 합친 돈과 11일의 자유 시간을 매년 청년 보장으로 운영하는 사회쯤 되면 언제 어디서든 남아프리카보다 더 벅찬 가슴을 느끼는 청춘의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저렇게 사고를 치는 그들의 방식이 부럽고 젊음이 부럽더라”는 나영석 PD의 말대로 청춘은 한사코 그렇게 만들어진다. 정답을 찾고 성취를 이뤄 청춘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문제를 외부에 일으키고 저질러봤기 때문에 문제를 발견할 줄 아는 내면의 뿌리가 생기면서 청춘은 완성된다.

그들 청춘의 구호 “감사하다”는 말은 문제를 만들어서 자신의 문제를 대면해본 청년이 선물 같은 기회를 만날 때 실패의 기억조차 복되게 돌아보면서 하게 되는 탄성이다. 주목받지 못한 삶이었어도 지금껏 존재해왔다는 사실만으로 지지받는 경험을 하게 되면 “감사하다”고 말하는 청춘이 된다. 그렇게 해서 모든 청년은 청춘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돈과 시간이다. 해법은 기본소득(시민임금)에 있지 싶다. 스위스는 올 6월 국민투표를 하고 핀란드는 내년에 시범사업을 하며 네덜란드는 지방정부들이 방식을 검토한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미국이 기본소득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라고 했고 영국왕립예술협회는 연간 630만원의 기본소득 모델(25~65세)을 제안해 올 4월부터 시행되는 생활임금 시급 1만2000원과 함께 결과가 주목된다.

우리의 경우 녹색당의 총선 공약에만 기본소득이 있으나 다음 선거엔 더 많은 정당의 공약이 될 것이다. 기존의 노동 및 고용시장은 붕괴되는 반면 알파고의 일자리 잠식은 곧 닥칠 일이라서 보수·진보 정당을 불문하고 기본소득 정책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올 7월 서울에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열린다. 세계 각지의 기본소득 정책들이 소개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청년들이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기본소득을 다오” 하며 합창해야 한다. 하여 돈과 시간이 주어지는 새집에서 청년은 청춘이 되고 노인은 품위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과 함께라면 청춘의 나라는 곧 노인의 나라다.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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