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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안채의 방 이름을 볼 때마다 내 빈약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것 같아 좀 민망하다. 크기와 위치에 따라 그냥 큰방, 골방, 작은방, 더 작은방이라고 이름 지은 탓이다. 이에 비해 퇴계실, 화담실, 다산실 등 한자 문패가 붙은 사랑채는 지적으로 느껴진다. 역시 철학자가 지은 이름은 다르다.

좌식으로 꾸며진 안채 골방에는 대체로 좌식에 맞는 공부 모임이 든다. 좌선과 함께 공부하는 <금강경> 강의, 라틴어로 성경 읽기, 희랍어로 <국가> 낭송하기, <장자> 읽기 등이 그것이다. 큰방이나 작은방에 드는 모임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다. 참여자의 수에 따르는 것이다.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는 60~70개의 공부 모임 중에서 큰방에 드는 모임은 여섯 개. 경쟁률이 10 대 1이나 되니 큰방에 드는 공부 모임으로 인문학의 흐름이랄까, 유행을 감지할 수도 있다.

새해 들어 큰방에 작은 이변이 생겼다. 책 읽고 글 쓰고 토론하는 모임이 월요일 밤 큰방을 차지한 것이다. 이 모임이 시작된 지 2년여 만에 큰방에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동체 공부 모임의 대부분이 특정 분야를 파고드는 것과 달리 이 모임의 책 읽기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문학, 역사, 정치와 경제, 철학, 문화예술은 물론이고 만화도 읽는다. 지난해 여름에는 바다를 주제로 한 책을 읽었고, 얼마 전에는 미국을 주제로 한 책들을 선정하기도 했다. 여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는 건 새해 들어 가벼운 책읽기와 글쓰기로 공부를 시작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모임이 큰방을 차지한 지 석 달이 채 못돼 다시 작은방으로 되돌아가야 할 위기에 몰렸다. 참여자가 줄어든 탓이다. 이를 두고 작심삼일이라고 탓할 수만은 없다. 매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의외로 어렵다.

돌아보면 공동체에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만큼 자주 생겨난 것도 드물다. 공동체의 공부가 철학을 중심으로 하는 만큼 철학 읽기 모임이 가장 활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시작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서양고전철학 읽기’ 모임이다. 학생, 주부, 회사원, 공무원은 물론이고 의사, 한의사, 피아니스트, 회계사, 기자, PD, 학원 원장, 대학 강사 등이 다양하게 참여하는 이 모임에서 읽은 책의 양은 적지 않다. 전공자에게도 쉽지 않은 플라톤 대화편 전편을 비롯해 방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도 대부분 읽었다.

공동체에서 몇 년씩이나 이어가며 많은 책을 읽는 이런 모임은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얼마 못가 흩어진 모임이 많고 오래 지속된 모임은 손꼽을 정도다. ‘러시아 장편 소설 읽기 결사’도 아쉬움이 남은 모임 중 하나다. 모임의 취지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처럼 우리에게 익숙하나 실제로 읽은 사람은 드문 러시아 장편 소설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를 길잡이로, 격주마다 한 권씩의 책을 읽기로 한 이 모임의 시작은 창대했다. 첫 모임은 큰방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참여자가 10명 이하가 줄어들고 이것이 다시 4~5명으로 되는 것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모임이 1년여 지속되면서 계획했던 러시아 장편을 모두 읽고 막을 내린 것은 길잡이 선생과 몇몇 참여자의 열정 덕이다.

카뮈의 전작이나 밀란 쿤데라 전작 읽기처럼 러시아 장편 읽기에 훨씬 못 미치는 모임도 많았다. 무엇보다 책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실제로 책 읽기 모임에 참여하는 한 직장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들어도 일주일에 평범한 책도 한 권 읽기가 버겁다고 했다. 여기에 글쓰기나 발제까지 포함되면 참여자들의 부담은 더 커진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 책읽기 모임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3월 하순에 시작하는 <오뒷세이아> <일리아스> 같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나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들의 작품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도 그 중 하나다. 이들 작품은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이슈로 우리 곁에 있는 심연’이다. 문제는 이들 고전을 혼자 읽는 게 만만찮다는 것이다. 이를 함께 읽고 토론하자는 것이 모임의 취지지만, 이 못지않은 방점은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에 찍혀 있다. 그리스 비극은 배역에 맞춰 낭송하거나 합송하면 재미도, 느낌도 달라질 것이다.

한 겨울 서울 시청 도서관을 찾은 많은 시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독서를 하며 휴일을 즐기고 있다. (출처 : 경향DB)


매주 특정한 요일을 책 읽는 날로 정한 뒤 이날 하루를 책과 더불어 지내는 모임도 계획하고 있다. 책 읽는 시간을 만들기가 익숙지 않거나 혼자 읽기가 쉽지 않은 이들이 아예 함께 모여서 책을 읽고 부담 없이 수다를 떨어보자는 것이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쓰기도 쉬워질 것이다.

공부는 책읽기에서 출발한다. 공동체는 혼자 하기보다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믿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혼자 읽는 ‘독서(獨書)’가 ‘독서(毒書)’가 되기까지야 하겠느냐만 함께 읽는 것의 장점은 많다.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려는가. 그럼, 읽고 토론하시라!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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