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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잔치는 끝났다. 아니다. 이것은 한 편의 부조리극이었다. 수십년 동안 이렇게 여야 정당이 동시에 망가져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승리한 측에 재를 뿌리려는 것이 아니다. 승패와는 별개로 정당 모두가 패배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이번 선거를 돌아보라. 이게 어떻게 정당정치인가. 시종일관 서로 삿대질 말고 한 게 뭐가 있나.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선택이라 하니 어떤 정당이든 찍기는 하였으나 어느 정당에도 신뢰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은 열린우리당 시절을 다시 보는 듯 안타까웠다. 마르크스가 ‘역사는 되풀이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했다는데 민주당의 현실은 가히 희극이다.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다수 의석을 차지했던 것처럼 민주당도 촛불의 바람으로 팡파르를 울렸다.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입법이라는 정치전선에 몰두하느라 민생에 눈을 돌리지 못했던 것처럼 민주당도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동안 민중의 생활에 대한 생각을 놓쳐버렸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열린우리당이 넓은 지지기반을 내부 균열로 까먹었던 것처럼 민주당도 광범위한 정치적 연대를 점차 잃어버렸다. 민주당은 촛불이라는 상징적 자산을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정치적 경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바꾸어버렸다. 그래서 독선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민주당은 개의치 않았다. 한 원로 정치학자가 그러다가는 독재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경고했지만 오불관언이었다. 내부 규율의 강화는 조직의 결속을 단단하게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정치적 연대의 기반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점차 좁아졌고 경쟁세력을 공격했던 정치적 프레임은 어느덧 부메랑이 되었다. 자유 보수진영에 대한 분노의 불길이 이번에는 민주 진보진영으로 방향을 바꾸어 무섭게 타올랐다. 자유 보수진영에 ‘부패’의 낙인을 찍었던 민심이 이제 민주 진보진영에 ‘위선’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겼다. 보수진영이 내세우던 자유는 ‘부자들의 자유’라고 힐난하던 이들이 진보진영이 올린 민주는 ‘엘리트들의 민주’라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민주 진보진영에 대한 배신감의 불길이 번져가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민의힘도 정당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을 이끌던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데도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패로 보수진영은 회복할 수 없는 심판을 받았다. 대선 패배, 지방선거와 총선 참패 등 실패의 행진을 계속해왔다. 당의 리더십은 붕괴하였으며 정치집단이라면 세워야 할 정체성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좌표 설정이 명확하지 않으니 조직은 느슨해지고 어수선해졌다.
유일한 희망의 단서는 ‘여의도 차르’로 불리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김종인의 등장 이후 지지도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곧 눈에 띌 정도로 오름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여의도 차르도 예전 같지 않았다. 김종인의 리더십은 어지럽던 내부 권력투쟁을 잠정휴전 상태로 겨우 봉합해 놓았을 뿐이다. 과거 문재인을 살리기 위해 민주화세력의 맏형 이해찬을 주저 없이 제물로 삼던 추상같은 위엄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광주를 찾아가 역사적 화해의 문을 두드리면서 역시 김종인이라는 찬사를 얻는 데까지는 성공하였으나 울림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경제민주화 같은 정책노선도 앞서 몇 차례 써 먹었던 상품인지라 감흥이 뒤따르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의 반사이익이지 적극적 지지의 결과는 아니다.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재인 심판’이라는 외침 외에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었다. 정권심판론이라는 프레임이 야당으로서의 당연한 전략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국민의힘이 아직 변화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종인 리더십마저 사라지게 되면 국민의힘의 변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작은 변화마저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까.
더불어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민의의 평결은 불합격이다. 정당으로서는 모두 패배했다. 이런 상태로 내년에 있을 선거를 향해 앞다툼을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오늘부터 모든 정당은 자기혁신에 나서라.
김태일 전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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