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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전역에 퍼진 수국은 축제 그 자체. 쇠소깍의 검은 모래와 몽돌 구르는 소리. 안개가 가득한 중산간도로가 그리워서 제주섬에 다녀왔다. 수영도 잠깐 즐겼어. 1년 전 제주 한 실내수영장에서 허리도 굽고 빼빼 마른 할머니가 자유형을 거뜬히 몇 바퀴. 나는 그야말로 어설픈 해적수영. 그날 결심했지. 수영을 정식으로 배우겠노라. 드디어 상급반 정도는 된다. 언젠가 제주섬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았지. 지독한 습기와 뙤약볕에 죽을동살동 쉽지 않은 도전. 이후엔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즐기며 그늘을 찾아 아이스크림을 먹고만 싶다. 어딘가 푯말에 ‘또옵써’. 요새 듣기 어려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인사말. ‘너딴 거 다시 볼 일 없다. 다시는 너랑 여행 안 해. 앞으로 연락하지 마. 어디서 나 아는 체하지 말아줘.’ 제 이익 따라 눈이 빨개진 사람들이 주로 쓰는 말. 고기국수를 후후 불어먹고, 맑은 술잔을 기울이며 ‘그래그래’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가 “또옵써!” 하는 것만 같은 글귀는 반갑다. 단절과 불통의 시대에 ‘또옵써’는, 그저 푯말에만 적힌 글귀만이 아니길.

최근에 몸이 살살 뭉개진 듯하여 건강검진을 받았다. 뱀파이어 영화 <박쥐>의 한 장면처럼 내 몸의 피를 쑥쑥 빼가더군. 내 목숨은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이 별에서의 여행은…. 불교의 세계관이 윤회 ‘또옵써’라면 기독교는 “무사 진작 천당완”. 인생이 이 목숨에서 끝나고 천당에 닿으면 완성이라지. 낯선 세상에 정착해서 살기도 쉽지 않을 테고, 말 잘하는 극성 신자들이 모여 산다면 그게 지옥 아닐까 싶기도 하다만.

“감귤은 언제 딸까?” 물으면 어른들은 “다 익어야 따지, 가을에 따는 거 아닌가?” 그런데 개구쟁이 아이들은 “주인이 안 볼 때 따죠” 대답한다. 동심을 가진 아이들은 엉뚱한 발상들을 많이 해. 어른들 계산속과 다르다. 귀여운 죄인들의 세계. 또 오고, 또 만나고 싶은 이들. 살기 좋은 세상은 당신이 계신 곳. 사랑하는 임이 ‘또옵써’ 하는 곳.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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