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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쉼’, 휴식을 주는 시인 ‘쉼보르스카’를 좋아해. 그녀의 시엔 ‘더 좋아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시가 한 편 있어. 우리말로 옮기자면, “영화를 좋아해. 고양이를 더 좋아해. 초록색을 더 좋아해. 뜻밖에 뜬금없는 게 더 좋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걸 더 좋아해. 의사들이랑 병이 아닌 다른 일로 떠드는 게 좋아. 시를 안 써서 조롱을 당하느니 시를 써서 조롱당하는 편이 더 좋아. 침략하는 나라보다 침략당하는 나라가 더 좋아. 조간신문의 1면보다 그림 형제의 동화 꼭지가 더 좋아.” 시의 한 부분. “바르타 강가에 홀로 서 있는 떡갈나무가 참 좋아.” 맘에 들어 밑줄을 그었다.

어떤 환자가 있었는데 의사가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내렸어. “적금이 1년 뒤에나 나오는데 그때야 병원비를 낼 수 있겠는데요.” 의사가 눈이 똥그래져서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 1년은 사십니다.” 차라리 병원보다 나무 그늘을 찾는 게 더 좋겠군.

이탈리아 말에 메리지아레(meriggiare)란 말이 있대. 폭염을 피해 ‘나무 그늘을 찾아 쉬는 휴식’을 뜻한대. 돌체 파르 니엔테(dolce far niente)란 말도 있다는데, ‘한껏 게을러도 되는 시간’이래. 메리지아레를 즐기며 그대 곁에서 게으른 휴식을 즐기고파.

휴가철 도로마다 꽉 막히더라. 시간 교통정보가 아니라 ‘실시간 고통 정보’가 되기도 해. 하지만 휴게소도 잠깐씩 들르고 전국에 사는 친구나 친척집에도 방문하면서 쉬엄쉬엄 목적지로!

해 없을 때 서둘러 마당과 산밭의 우북한 풀을 벴다. 봄에 옥수수를 심었는데 제법 굵어져서 첫맛을 봤어. 열대야 푹푹 찌는데 이열치열 옥수수를 폭폭 찐다. 저녁마다 예술감독 손열음씨가 준비한 ‘평창 대관령 음악제’를 라디오로 듣는데, 낡은 선풍기 소음에 섞인 클래식 선율이 근사해라. 옥수수를 호호 불어먹으면서 공연실황을 듣곤 해. 올해는 3주간 공연이라니 여름밤의 호강이렷다. 불공정 매관매직, 공약 시치미 등 ‘고통정보’ 뉴스에 기가 막힌 열대야 속에서.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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