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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코끼리와 호랑이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만일 호랑이가 가만히 서 있는다면 코끼리가 그 막강한 엄니로 호랑이를 짓누르겠지요. 그러나 호랑이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낮에는 밀림에 숨어 있고 밤에 다시 나타납니다. 호랑이는 코끼리 등에 뛰어올라 코끼리의 가죽을 찢어놓고 다시 어두운 밀림으로 뛰어들어갑니다. 그러면 코끼리는 천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갑니다. 이것이 인도차이나의 전쟁이 될 것입니다.”


베트남 혁명가 호찌민이 1946년 9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주말, 윌리엄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을 읽으며 게릴라전을 생각했다.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에 이어 일주일 동안 두 권째 읽은 혁명가 평전이다. 바쁜 가운데 이들 전기를 읽으며 게릴라전을 떠올린 계기가 있다. 최근 발표된 서울시의 인문학 중심 평생교육 계획을 접하면서다. 


게릴라전. 가벼운 장비로 무장한 소규모 비정규군이 정규군을 상대로 벌이는 전투다. 그러나 게릴라는 토착 주민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존재다. 주민과 게릴라의 관계는 물과 물고기의 관계에 비유된다. 거대 지자체인 서울시가 인문학 교육에 나서겠다는 보도를 보며 엉뚱하게 게릴라전을 생각하는 건 무슨 까닭인가.



대안 인문학 공동체를 꾸려가는 입장에서 서울시의 인문학 교육 계획은 눈을 번쩍 뜨게 하기에 충분하다. 인문학 공동체를 대상으로 공공시설 등의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이다. 매월 건물 월세 내기에 급급한 공동체에 공간을 지원해 주겠다는 것은 공동체 운영을 사실상 책임져 주겠다는 말과 같다.


물론 올해 57억원, 내년 81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서울시 계획의 무게중심은 인문학 공동체에 있지 않다. 시민청 시민대학과 부설 평생교육장을 운영하고 서울시립대 시민대학과 권역별 시민대학을 개설하는 것이 핵심이다. 추진력이 강한 박원순 시장답게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미 실행에 옮겨졌다.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는 시민청 시민대학은 72개 과정을 시작했고 서울시립대 시민대학도 곧 72개 과정을 시작한다. 아울러 성공회대, 이화여대, 경희대 등 3개 대학이 서울시와 제휴해 권역별 시민대학을 개설하는 등 내년까지 5개 권역별 시민대학이 문을 여는 것으로 돼 있다. 대안 인문학 공동체 지원은 말미에 몇 줄 삽입된 정도다. 어쨌든 좋다. 이것으로 “시민에게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서 시민력을 높이는” 서울시의 바람대로 된다면 더할 나위없다.


하지만 직시하자. 이른바 인문학 열풍의 진원인 대학 밖 인문학 공동체의 활성화가 대학 인문학의 실패에서 유래한다는 건 상식이다. 대학이 기업의 하청기관화하거나 그 자체가 돈벌이를 하는 기업체로 전환하면서 돈 안 되는 인문학은 벼랑에 몰렸고, 이것이 대학 밖 인문학 공동체의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학 밖 인문학 열풍으로 일부 연구자가 대학에 흡수되고 몇몇 대학 또한 인문학 수요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지자체와 지역도서관들이 다투어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백화점 문화센터까지 이에 가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기업화한 대학, 백화점들과 더불어 주도하는 인문학이 그 본령과 맞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는 노숙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희망의 인문학’ 교육을 실시해 수료자의 3분의 1이 자산형성 저축을 하게 됐다고 자랑했지만 인문학이 저축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인문학의 본령은 경쟁력 향상이나 돈 모으기가 아니라 돈과 경쟁력 운운하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다.


결국 서울시의 지원은 인문학과 관계없이 번듯한 외관을 갖추었거나 제안서를 잘 만들어 내는 약삭빠른 단체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서울시와 제휴한 대학들은 모두 오세훈 시장 시절 ‘희망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학들이다. 같은 대학들이 시행하는 박원순표 인문학과 오세훈표 인문학은 어떻게 달라질까. 현재 활동 중인 몇몇 공동체도 수혜자가 되겠지만 이들도 종내는 서울시의 눈치나 보는 단체로 전락할 수 있다. 공무원의 눈치를 살피며 지원을 받느니 풍찬노숙하며 자유롭게 공부하는 게릴라가 낫지 않을까. 


사실 대안 인문학 공동체의 활동은 이미 게릴라에 가깝다. 온갖 역경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이 그렇고 운영자와 참여자의 강한 연대가 그렇다. 대안 인문학 공동체를 부양하는 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아니다. 인문학 공부에 목말라하며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게릴라의 전술이 무궁무진하듯 인문학 공동체의 공부 내용이나 방식도 자유자재하다. 이곳에서는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자율이 생명이다. 한쪽에서는 초보들이 어울려 철학 입문을 공부하고, 다른 쪽에서는 전문 학자와 더불어 플라톤, 니체 전집을 강독하거나 <에티카>를 1년에 걸쳐 꼼꼼하게 읽어나간다. <도덕경>에 이어 <장자>를 통째로 암송하려는 팀이 있는가하면 ‘사서(四書)’의 21세기형 변용을 사유하며 글쓰기를 하는 반도 있다. 건축, 영화, 미술, 사진 등의 예술과 인문학의 접속을 꾀하는 동아리도 있다. 스스로의 공부를 책으로 쓰는 팀도 조직됐고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태 모임도 만들어지고 있다.


대개 게릴라전의 요체는 ‘히트 앤드 런’에 있으며 적군의 포위 공격이나 격멸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방구로 지정한 지역에서는 역량을 총동원해 적을 격퇴한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중국과 쿠바, 인도차이나, 알제리의 운명을 바꾼 건 게릴라전이다. 그렇다면 게릴라를 자처하는 대안 인문학 공동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체 게바라는 말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김종락 | 대안연구 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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