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강원도에 가면 놓칠 수 없는 음식, 막국수를 ‘막국시’라 불러. 메밀국수는 ‘메물국시’, 또는 ‘느릉국’이라고도 한대. 손칼국수는 ‘가수기’라 하는데, 타지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막국수란 막 부서지고 막 먹어 해치우는 국수. 메밀의 가장 얇은 겉껍질만 벗기고 빻아 만든 메밀가루. 이를 반죽해 뽑은 거무튀튀한 면발. 식당에 가면 “아주머이! 여기 마카 막국시~” 그런다. ‘마카’는 강원도 말로 모두란 뜻. 친구 셋이 커피가게에 가서 “마카 커피요”이렇게 주문을 했는데, 모카 커피 석 잔이 나왔다는 ‘설’. 아무리 국수라도 막 먹다가 체하는 수가 있지. 스님도 아닌데 국수라면 무조건 콜, 체할 만큼 환장을 하는 편이다. 멸치국수 골목까지 있는 담양에 사는 것도 다 이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해.

요새 사람들은 분노 게이지가 높고, 정중히 대면할 일도 화딱지부터 내니 그야말로 어질병이 고질병이 된 셈. 누구에게라도 고성에 막말을 서슴지 않고, 거친 욕설이나 무례한 언사들을 막국수 면발 쏟듯 게워내면서 제 딴엔 아이들을 또 기른다. 애들이 커서 뭐가 되겠는가. 살살 구슬리며 조율해가는 사회생활 같은 걸 과연 할 수 있겠나. 눈알을 부라리면서 막말을 날리면 더는 상대하기 싫음. 대화가 중단된 곳은 어디나 전쟁터.

재밌는 이야기 한 토막 해줄게. 축사가 망할 지경이라 팔려 새 주인이 왔는데, 이번엔 협상의 달인. 소들에게 매우 정중하고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지. 

“얘들아. 나는 딱 한마디만 할게. 고기를 내다 팔 것인지 아니면 우유를 내다 팔 것인지 모두 너희들에게 달렸어. 내일부터 두고 볼 테니 알아서 해라!” 다음날부터 최고급 우유가 콸콸 쏟아졌다는 ‘설’.

새벽엔 춥다. 빽빽거리는 고성과 막말들에 온 나라가 춥다. 따뜻한 온면, 강원도 ‘산골 아주머이’가 내주는 막국수 한 그릇 먹고파라. 나랑 같이 갈 사람, 이리 붙어라~.


<임의진 목사·시인>

 

 

연재 | 임의진의 시골편지 - 경향신문

693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구독하기 도움말 연재기사를 구독하여 새로운 기사를 메일로 먼저 받아보세요.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검색 초기화

www.khan.co.kr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이여  (0) 2022.10.13
멍때리기  (0) 2022.10.06
젖니 아이들  (0) 2022.09.22
브라질 앵무새  (0) 2022.09.15
멸치김치찌개  (0) 2022.09.08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