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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자본주의의 모순을 역사만화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노동운동 쪽 전단과 인쇄물 속의 삽화와 만화를 도맡다시피 했던 만화가 이은홍은 지금 충북 제천 월악산 아래 시골 마을에서 산다. 농사를 짓지 않고 어린이 역사만화 작업을 하며 살지만 동네사람들과 아주 사이가 좋다. 인터뷰하러 간 날은 마침 ‘영화 감상회’ 날이었다. 이은홍은 한 달에 한 번 DVD를 고르고 프로젝터를 빌려서 동네사람들과 영화를 보고 논다. 그는 그의 말마따나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마을에 빌붙어” 잘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수천년간의 역사가 극소수 지배계급과 대다수 사람들로 구분
어떻게 서로 도우며 살아갈수 있을지 고민… 그런 과정이 역사다”

김규항 = ‘깡순이’ 캐릭터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노동운동 만화 작업을 꽤 오래 했다.

이은홍 =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1984년에 노동현장에 들어갔다. 거창한 노동운동을 계획한 건 아니고 공장 노동자로 살면 적어도 현실 앞에 부끄럽진 않을 것 같았다. 공장에 다니다 발을 다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서노련에서 만화 청탁이 왔다.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보안사에 끌려가 당하기도 하고 ‘노동’이 붙은 온갖 곳과 작업을 했다. 2000년에 그만두었으니 15년가량 한 셈이다.

김규항 =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이은홍 = 민주화가 되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세상이 달라졌다고들 하는데 노동자 입장에선 대통령 얼굴만 바뀌었지 다른 게 없었다. 만화의 내용도 같을 수밖에 없었다. 삐라 한 장만 갖고 있어도 잡혀가던 시절엔 그걸 그리는 나도 의미가 컸는데 대공장은 얼마, 작은 노조는 얼마, 원고료나 따지고 있자니 이건 운동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구나 싶었다.

김규항 = 운동인가 아닌가는 운동의 모양이 아니라 사회에 영향을 주는가의 문제이니 지칠 만도 했다. 이젠 아이들을 위한 역사만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이은홍 = 1995년에 사계절출판사의 ‘역사신문’ 작업에 참여하게 되어 선사시대부터 작업을 해나가는데 역사라는 게 참 재미있는 거더라. 역사란 결국 사람들이 먹고살아온 이야기 아닌가. 그 시스템이 몇 천년 동안 소수의 지배계급과 대다수의 사람들로 나뉘어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는 건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김규항 =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역사의 정보나 지식을 아는 게 아니라 역사의식을 갖는 것이다. 아이들과는 역사에 대해 어떻게 소통하는가.

이은홍 = 아이들 상대로 역사 강연 같은 걸 하면 ‘너희들이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을 말해보라’고 한다. 태정태세문단세부터 시작해 연속극에서 본 인물들 하며 대략 150명이 쏟아져 나온다. 그걸 칠판에 받아 적고 아이들과 분류를 한다. 왕이 70~80명, 장군이나 관료가 30~40명, 학자와 문화예술인 몇 명. 150명 중 120~130명이 지배계급인 것이다. 그리고 남녀를 갈라보면 모조리 남자다. 아이들은 놀란다. 그러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착하게 나눠먹으며 살아갈 수 있는가.’ ‘민주주의와 평등이 중요하고 역사란 그걸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김규항 = 역사만화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

이은홍 = 돈에 대해, 화폐에 대해선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데 돈이 자본이 되고 자본주의가 되는 데 이르면 쉽지가 않다. 아이들에게 자본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큰 숙제다. 아이들에게 되도록 선을 가르치고 싶은데 자본주의는 선이 아니라 악이다. 부모들이 이미 몸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란 경쟁 속에서 개별화되어 남을 파괴하고 나도 파괴되는 체제라는 걸. 그런 걸 아이들에게 잘 설명하려면 공부도 더 해야 하는데 워낙 게으르게 사니 자꾸만 미루어진다.

김규항 = 지난 역사를 파악하는 건 쉽지만 현재 역사를 파악하는 건 어려운 법이다.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자기동일시하고 모든 문제를 이명박에게 돌리기 시작한 이후 우리 사회의 역사의식은 마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은홍 = 노동자 민중 입장에서 노무현이 이명박보다 덜하지 않았다는 사실들을 애써 외면하고 덮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체제와 시스템을 보지 않고 인물만 보려 하는 건 역사의식이 아니라 팬덤현상이다. 노동자 민중이 잘 먹고 살아가는가가 역사의 핵심이고 현실의 핵심이다. 성숙한 시민이란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떻게 하면 더 고루 잘 먹고사는가를 고민하며 함께 나아가는 사람이다.

김규항 = 평범한 시민이 건강한 역사의식을 갖기엔 이 체제가 주는 불안감이 너무 크다. 

이은홍 = 진보적인 지식인과 언론이라도 그런 고민을 하고 담론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거의 안 보인다. 우리 역사는 어두운 셈이다.

김규항 = 촛불집회 같은 걸 보면 어떤가.

이은홍 = 도시에 살고 있으면 자주 나갔겠지만 그게 어려우니 인터넷으로 본다. 보고 있으면 미안하고 눈물이 난다. 그래서 차마 끄질 못하고 밤을 새워 본다. 그런데 촛불을 든 사람들을 온전히 믿진 않는다. 특정한 정치인에 대한 인격적 사랑이나 모독으로 체제에 대한 고민을 치환해버리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안하고 눈물나고.

김규항 = 말씀대로 지식인과 언론의 책임이 크다. 귀촌한 지 9년째인데.

이은홍 = 지금 스무살인 아들이 ‘똥을 퍼도 좋으니까 시골에서 학교 다니고 싶다’고 한 게 시작이었다. 아내는 드물게 단단한 사람인데도 도시에서 정상적으로 아이 교육을 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아파트에서 10여년을 살았는데 나랑 마주치면 장난치고 인사하던 똘망똘망한 아이들이 고학년 되고 중학생 되면 하나같이 동태처럼 되어버렸다. 늦은 밤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큰 가방 메고 눈은 게슴츠레해가지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내 아이도 저렇게 되는구나 싶어 앞이 캄캄했다.

김규항 =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은홍 = 내가 누렸던 10대의 즐거움과 행복을 적어도 그만큼은 주고 싶었는데 핵심은 시간이었다. 뭔 짓을 하든 제 몫으로 쓰는 시간을 보장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려가 살 곳을 알아보러 다니던 어느 날 시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비가 왔다. 아이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종이컵에 받아가면서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얼굴로 노는 거였다. ‘저거다. 종이컵 하나만 있으면 저렇게 놀 수 있구나.’

김규항 = 시골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려 애쓰는 게 현실이다. 

이은홍 = 이 동네의 내 또래들이, 말하자면 마지막 농부들인데 요즘은 소농은 다 죽고 정부 정책도 대농 위주라 수입이 도시 사람들 부럽지 않은 경우도 꽤 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일해 번 돈이 아이들 도시로 보내는 데 다 들어간다. 술자리에서 아이들 걱정을 같이한다. 그런데 난 ‘너희 아이들의 미래가 밝지 못하다, 졸업하고 대부분 비정규직이 되는 암울한 현실이다’ 이렇게 차마 말을 못하겠다. 오히려 동네 친구들이 우리 아들 걱정을 스스럼없이 한다. ‘대학도 안 가고 어떻게 사냐’고. 

김규항 = 그런 불안감은 정도 차이일 뿐 대안교육을 하고 대학입시에 올인하지 않는 부모들도 다를 바 없는데 정말 불안하지 않은가. 

이은홍 = 작년엔가 다들 하도 불안해하니 나도 불안해해야 하는 건가 싶어서 내 아들이 가진 스펙을 정리해봤다. 그야말로 엄청났다. 나보다 기타 잘 치지, 컴퓨터도 도사지, 좋은 친구 내 10대 때보다 더 많지, 주변에 좋은 어른들 많지. 내가 걔보다 나은 건 현찰을 좀 더 갖고 있는 것 하나더라. 그리고 아들이 음악을 하겠다는 게 정해져 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도대체 내가 뭘 불안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김규항 = 스펙을 그렇게 정리한다면 생각들이 달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스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은홍 = 그런 스펙이 문제라기보다 그런 스펙을 쌓는 이유가 문제다. 경쟁하기 위해서 아닌가. 내 친구와 내 이웃과 경쟁하기 위해서. 99%가 서로 연대하고 돕는 시스템을 궁리해도 모자랄 판에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사는 시스템으로 가면 어떡하나.

김규항 = 아이를 경쟁에 밀어넣는 게 잘못된 것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편한 얼굴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이젠 교실에서도 집에서도 경쟁은 그저 선이다. 그걸 수용하지 않는 ‘고래가 그랬어’도 종종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충고를 듣곤 한다. 

이은홍 = 경쟁이 사회 원리라면 굳이 인간 사회라고 할 게 있는가. 짐승들의 사회도 그보단 낫다. 불안을 없애려면 체제에 대한 고민을 함께해야 한다. 계급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지배체제의 변화라든지.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인물만 보면서 개별 차원으로 해결하려 하니 불안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김규항 = 아들이 홍대 인디씬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데 만일 자리 못 잡고 몇 년 후에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어떨까. 실패했다고 말할 사람도 많을 텐데.

이은홍 = 성공인가 실패인가의 기준은 내가 행복한가이다. 음악으로 뜨고 대박나서 돈 많이 벌고 유명해져도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꽝이다. 만일 도시에서 활동을 접고 오면 밥값은 하게 해야지. 이 동네엔 일손이 부족해서 밥값 할 것 많다. 나머지는 아들이 알아서 할 문제다. 친구들과 술먹고 놀면서 가끔 당구도 치고 그렇게 살면 된다. 사실 나는 은근히 그런 상상을 한다. 아들이 면사무소 옆에 작은 가게라도 하나 열어서 기타작업도 하고 노래도 만들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하는 모습. 부담이 될까 싶어 한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김규항 = 불안한 게 아무것도 없나. 

이은홍 = 얘가 밥먹고 뒷자리를 깔끔하게 처리 안 한다든가 제 옷가지나 잠자리를 정리 잘 안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불안하다. 남하고 어울려 살면서 남에게 피해주고 욕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잔소리를 해서 가르쳐야 하는데 잔소리하면 싫어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싶고. 

김규항 = 대학 진학은 고려한 적이 없나.

이은홍 = 권유한 적이 있다. 아이가 공식 학력은 중졸인데 ‘검정고시 보고 대학에 가는 것 고려해봐라, 아빠 고향 친구들 보면 대학 안 나왔다고 평생 열등감 갖는 경우도 있더라.’ 그랬더니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고,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자기가 대학 가겠다면 당연히 존중할 것이다. 중요한 건 자기 필요와 판단이다.

김규항 = 마을 사람들과 참 좋아 보인다. 귀농이나 귀촌한 사람들 중엔 마을과 겉도는 경우도 많다. 손님은 거의 외지 사람들이고 만날 자기들끼리 어울려 어려운 말로 대화하고.

이은홍 = 집단의 이념이나 공동체성 내세워서 끼리끼리 귀농·귀촌하는 건 뉴타운과 다를 바 없다. 나도 오래전엔 그런 식의 생각을 했지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농촌 마을이라는 게 크든 작든 적어도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일단 마을에 빌붙어 산다는 생각을 하는 게 마땅하다. 마을을 위해서 뭔가를 하겠다, 바꾸어보겠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제국주의고 이명박이다. 1000년 이상의 역사 속에 나를 살게 해주었으니 내가 마을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부터 궁리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동네사람들과 안 좋을 일이 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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