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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과는 ‘농활’이라는 인연이 있다. 도시 학생들에게 농촌에 대한 경험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깊게 하는 데에는 농활이 큰 역할을 했다. 나도 그랬다. 지금도 뉴스에 익산 소식이 들리면 귀를 쫑긋 세웠다. 최근 몇 년간 들려온 익산의 소식은 ‘장점마을’이었다. 

지난달 14일 환경부는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이 ‘금강농산’의 비료공장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비료는 크게 유기질비료와 무기질비료로 나누는데 유기질비료에는 기름을 짜고 남은 ‘유박’이나 생선을 가공하고 남은 ‘어박’ 등이 들어간다. 금강농산에서 생산하는 비료는 담배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연초박’을 원료로 쓰던 유기질비료였다. 퇴비로만 허용된 연초박을 불법으로 태우는 과정에서 온 동네에 유해가스를 내뿜었고 장점마을 주민들은 익산시와 전북도에 민원을 제기해 왔다. 수요일에 KT&G 본사 앞에 장점마을 주민들이 섰다. 그냥 피워도 사람 몸에 해롭다는 담배인데 그 찌꺼기를 태웠으니 빤한 결론 아닌가. 이 사태에 KT&G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언론들도 이 사태에 관심을 가지면서 최근의 일인 것 같지만 주민들은 ‘18년간의 싸움’이라 한다. 담당 공무원은 ‘유기농비료’여서 문제가 있을 줄 몰랐다거나 시찰을 나갔었노라 발뺌하느라 바빴다. 그간 부실하게 이루어진 환경조사로 많은 주민들이 원인이 특정되기도 전에 고통 속에 유명을 달리했다. 

‘장점마을’ 사건은 그나마 주민들끼리 반목하지 않고 지역의 시민사회가 손을 잡고 함께 싸우고 있다. 농촌 환경오염 문제의 대명사인 경북 봉화군의 ‘석포제련소’는 영풍문고로 유명한 영풍의 업력 50년의 아연제련공장이다. 그간 카드뮴을 비롯해 각종 환경오염을 일으켜 왔다. 안동MBC는 꾸준한 기획보도로 석포제련소 문제를 농촌지역의 문제이자, 낙동강을 식수로 쓰는 영남권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취재진은 침묵하거나 취재를 막는 지역민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금강농산의 비료공장은 소규모 업체지만, 석포제련소는 대형 사업장이다 보니 여기에 생계를 건 주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활권이 겹치는 강원 태백시는 태백시의 생존권 문제라며 석포제련소의 조업정지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뜻이었을까. 

농촌에서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제천시 송학면 인근의 주민들은 광부도 아닌 농부였지만 진폐증을 앓았다. ‘아세아시멘트공장’에서 내뿜는 분진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일은 시멘트공장에서 밥벌이를 하는 이웃들과의 반목과 마을 공동체의 파괴라고 말한다. 2012년 충주MBC에서 이 문제를 <투구꽃 그 마을>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담았고, 해외에서 상까지 받았어도 정작 시멘트 회사의 노조원들과 지역민들은 다큐멘터리 상영을 막아서기도 했다. 

대도시에는 감히 들어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유해시설들은 자본 유치와 고용 창출이라는 명분과 함께 농어촌으로 흘러들어간다. 농촌 곳곳마다 폐기물시설이나 공장이 들어서려 할 때마다 ‘결사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부끼지만 싸울 사람이 원체 적고 근력 달리는 노인들이 다수이니 매번 지고 만다. 농사에는 비료가 꼭 필요하지만 결국 농촌 주민들의 몸을 갉아먹었다. 어디 비료뿐이겠는가. 지금도 농촌에서는 무언가가 태워지고 하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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