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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알코올이라고 했어요.” 모두가 공통으로 하는 말이었다. 실명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사용하는 그 액체가 그냥 알코올이라 여겼다. 질문은 필요 없었다. 누구든 그냥 일을 했고, 파견 회사도 일한 회사도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어지러우면 창가에 가 심호흡을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자신의 시신경과 뇌를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무방비로 노출됐을까 몇 번이고 궁금했다.
그 ‘알코올’의 정체는 메탄올이었다. 무색의 액체 말이다. 피해자들은 그 액체를 보통 하루 12시간 일하는 내내 기계에 부었고, 또 자신들의 몸으로 흡수했다. 적게는 8일, 많게는 4개월의 노동으로 그들은 익숙한 세상을 못 보게 됐다. ‘삼성전자 하청업체 노동자 메탄올 실명’이라는 기사로 올 초 잠깐 언론에 언급됐다. 갤럭시 같은 휴대폰의 버튼이나 뒤판을 만들던 그이들이다.
처음 그들은 앞이 안 보이고 호흡곤란이 와 응급실에 실려가서도 대책이 없었다. 그 메탄올이 몸에 들어와 시신경과 뇌를 표적으로 공격을 해버릴지는 역시 몰랐다. 우연히 담당 의사가 메탄올 급성 중독을 의심했다. 그제서야 노동자들은 실명의 이유를 찾았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실명이 그 알코올 때문이었는지 모른 채 암흑을 시간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파견노동자였고, 제조업 파견은 현행법상 금지돼 있었으며, 그들의 노동은 4대 보험에도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조합법 그 어떤 노동법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최저임금의 값싼 노동은 삼성 휴대폰을 만들어 냈지만 대기업은 그저 하청업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올해 초, 이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노동부가 나섰었다. 여러 시민단체와 노동조합들은 추가 피해자를 찾아내야 한다고 했으나, 노동부는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또 원청 삼성은 그 일은 2차 하청업체가 관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같은 일을 하던 사람들은 정말 모두 괜찮은 걸까? 올 초 실명 피해를 입었던 노동자들 가족은 추가 피해자 소식을 듣고 기막혀 했다. 이번 피해자들은 이들보다 먼저 혹은 같은 시기에 사고를 당했다. 오늘 쓰러져 내일 회사에 안 나와도 그만인 파견노동이 불러온 참사, 그들을 찾을 수는 있을까?
당부한다. 노동부는 당장, 영문도 모른 채 어둠에 놓여있을 피해자들을 찾는 일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 최소한 실명의 이유는 알고 산재보상이라도 받아 적게나마 생계를 해결해야 할 것 아닌가. 이 노동자들의 신호를 세심하게 반성하고 파견노동을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 그리고 삼성. 책임 여부는 나중 문제다. 광고를 해서라도 갤럭시를 만들다가 실명된 노동자들을 찾는 데 앞장서길 바란다. 그것이 당신들이 기업으로서 이 사회와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다.
박혜영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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