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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에 대한 기억은 2009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관한 좌담이 경향신문에 실린 날 아침 그는 전화를 걸어 내가 말한 ‘좌파 신자유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 대통령이 좌파 신자유주의를 스스로 주장한 게 아니라 당시 좌우로부터의 비판에 대한 여담에 가까운 말이었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태도는 그의 자상한 인품을 생각하게 했다.
SBS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 (경향신문DB)
지난해 봄 문재인은 내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출범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는 진보개혁세력이 재집권한다면 약자를 보호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참여민주주의, 균형발전, 동북아 평화·번영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목표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말한 ‘지나간 미래’다. 이 미래를 일궈야 할 정치적 책임이 그의 책 제목처럼 문재인에겐 ‘운명’인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를 내가 주목한 것은 몇 년 전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이 베스트셀러에서 그는 삶과 기업운영에서 기본과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늦가을에는 처음으로 만나 양극화를 포함한 주요 사회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받은 인상은 안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치라는 점이다. 가치는 욕망과 물질에 맞서는 정신과 규범의 지향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안철수재단(가칭) 설립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미소를 짓고 있다. (경향신문DB)
안철수의 생각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어렵다. 그는 2030세대 신인류를 대변한다.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을 넘어서 있는 생각은 역설적 개념인 ‘공동체적 개인주의’에 가깝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개인의 창의성이 존중받는 열린 공동체다. 그가 중시하는 건 정치라기보다는 사회다. 정치 참여가 핵심이 아니라 사회 발전에의 기여가 여전히 그에겐 소중한 가치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재인과 안철수가 주목받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이 새로운 인물이라기보다는 이들의 삶과 가치가 바로 시대정신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박정희의 시대정신이 물질적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에 있었다면, 노무현의 시대정신은 인간다운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었다. 소멸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시민 다수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은 소통과 참여의 민주주의, 더불어 살 수 있는 경제민주화이며, 문재인과 안철수는 바로 이 시대정신에 가깝게 다가선 인물들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사회 자원의 배분을 최종 결정하는 영역이자 행위다. 이를 위해선 운명을 넘어선 의지, 선택을 넘어선 소명이 요구된다. ‘노무현의 친구’를 넘어서 정치적 독립을 획득하는 것이 문재인에게 부여된 과제다. 사석에서 나는 노무현을 안고 노무현을 넘어가야 한다고 그에게 말한 적이 있다. 노무현의 시대정신에서 출발하되 국면사 변동에 대응하는 문재인의 비전을 당당하게 세울 때, 운명의 대행자가 아니라 의지의 프로메테우스가 될 때, 문재인은 진보개혁세력을 대표하는 정치가가 될 것이다.
안철수가 과연 정치를 선택할 것인지를 예견하긴 어렵다. 그에게 지금까지 가장 소중한 가치는 자신의 말처럼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기 전까지 동시대인과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며 살아가는 데 있다. 가치 실현의 수단으로 안철수가 심사숙고 끝에 정치를 선택한다면,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다. 소명은 정치가 난장판이더라도 정치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뜻한다.
자, 결론을 맺자. 누구는 올 대선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중대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내게 올 대선은 기억의 선거다. 2008년 촛불집회, 2009년 서울광장의 눈물, 2011년 희망버스의 기억 속에 치러질 선거다. 누가 진보개혁세력의 리더가 되든 그는 기억의 정치에서 미래의 정치로 가는 문을 열 의무를 안고 있다. 새로운 미래의 문을 활짝 여는 데 문재인의 의지와 안철수의 소명이 당당히 발휘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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