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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주 목요일(1월31일)에 임명 사실을 발표한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야기다. 당시에 기사를 썼지만, 이번 칼럼을 통해 다시 이야기하려 한다. 문체부가 기대한 바와 달리 설 연휴 기간에도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인선 절차의 문제점을 잊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해 11월 공모를 시작한 지 2개월여 만이었다. 공식 발표는 임명이 결정된 이날이 아니라 다음날(2월1일)이라고 했다.

‘꼼수’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1일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금요일이었다. 독자들이 더 잘 알겠지만 금요일이 되면 뉴스를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여기에 설날까지 있으니 뉴스 수요는 더욱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일주일이 지난 뒤에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새로 뽑혔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31일 오전 윤범모 관장에게 내정 통보 사실을 확인한 뒤 부랴부랴 기사를 썼다. 문체부는 내정 사실 보도가 이어지자 이날 오후 새로운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선정됐음을 발표했다.

윤범모 신임 관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1979년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계간미술’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전시기획자 겸 비평가로 발을 넓혔고 가천대(옛 경원대)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큐레이터협회장,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장 등도 지냈다.

민중미술 계열과 활발히 교류했다. 1980년대 새로운 미술운동을 일으킨 소집단 ‘현실과 발언’ 창립 멤버였고, 민족미술협의회 산하 ‘그림마당 민’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2014년에는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책임 큐레이터로 일했다. 훌륭한 경력을 지닌 기획자이자 미술사학자다. 개인적으로 만나 본 적은 없으나 원만한 성품을 지닌 인물로 알고 있다. 취재원들은 대부분 ‘좋은 분’이라고 평했고 미술기자를 한 선배들에게도 나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인 평가일 뿐이다. 무엇보다 윤범모 관장은 미술관의 관장을 맡아본 적이 없다. 다른 행정경험도 없다. 과천, 서울, 덕수궁, 청주관 등 4개관을 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 예산은 632억원이고 직원도 100명이 넘는다.

이전에 관장 경력이 없다고 해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직 수행을 못하란 법은 없다. 정부가 행정업무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고위공무원 역량평가’라는 제도도 있다. 그런데 문체부는 지난해 12월 윤 관장을 포함해 최종후보로 오른 3명에게 역량평가를 면제시켜주려 했다. 윤 관장을 제외한 2명은 전직 미술관장으로 행정경험이 이미 있었다. 경향신문 등이 ‘내정된 특정 후보를 위해 문체부가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문체부는 역량평가를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진행된 역량평가에서 최종후보 3명 중 윤 관장 등 2명이 낙제점을 받았다. 정상적이라면 나머지 1명이 ‘단수후보’로 도종환 문체부 장관에게 추천되어야 했다. 그러나 문체부는 떨어진 2명에게 재평가 기회를 부여했다. 윤 관장은 이번에는 통과했고 최종 낙점을 받았다. 윤 관장은 “역량평가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절차를 다 밟았고 다 잘됐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지난 1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벌써 ‘코드 인사’란 말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코드 인사’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정권과 호흡이 맞는 인사가 기관장직을 더 잘 수행할 수도 있다. 문제는 ‘코드 인사’가 아니다. ‘꼼수’로 공모절차를 통과한 것이 더 큰 흠이다.

윤 관장이 앞으로 3년간 보란듯이 관장직을 해내길 기원한다. 진심이다. 다만 이것 하나는 기억하겠다. 절차적 정당성에는 분명히 하자가 있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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