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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포실이가 아픈가봐요! 내가 불러도 꼼짝을 안 해요. 어떡하면 돼요?”

현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친구이자 강아지인 포실이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포실이는 현주의 말 그대로 세상만사에 아무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앞발 사이에 머리를 묻고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현주의 선생을 맡고 있는 인공지능 서낭은 소형 카메라를 조금 움직여 포실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포실이가 목에 감고 있는 상태 스캐너의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포실이의 신체 활동은 정상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주야, 포실이는 아프지 않으니까 병원에 안 데려가도 돼.”

서낭이 안심시켰지만 현주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눈으로 소형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서낭은 현주가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대화의 방향을 또 다른 학생인 설주에게 향했다.

“설주는 어떻게 생각해? 포실이가 왜 저럴까?”

“현주가 지나치게 포실이를 아껴서 하루 종일 만지고 끌어안았잖아요. 스트레스가 쌓여서 저런 반응을 보인 거예요.”

사실 설주와 서낭은 음성을 통해 대화할 필요가 없었다. 설주도 서낭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다. 하지만 사람의 대화 속도와 반응 속도에 맞춰 교류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과 인간의 세상에 대해 배우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훗날 서낭처럼 ‘선생 인공지능’이 돼야 할 설주는 더욱 그랬다.

설주의 말을 들은 현주가 되물었다.

“그럼 내 잘못이에요? 이젠 포실이를 만지면 안 돼요?”

개 좀 내버려둬라. 네가 그러니까 개 성질을 버리는 거야. 현주의 어머니라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학습 알고리즘이 그렇듯 사람 역시 본래 성공뿐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존재였다. 그 사실이 널리 알려졌음에도 아직까지 많은 인간 부모가 자식의 실수나 실패를 나무라기에 급급해한다.

인구가 꾸준히 줄면서 인간의 직업 목록에서 ‘선생’이 사라지자 인공지능이 그 자리를 대체한 건, 실패를 해도 보상을 받고 궁극적으로 학습 효과를 이끌어내는 인공지능 학습법이 인간에게도 유효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본래 인간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런 면을 완벽히 흉내 낼 수 있게 된 반면, 인간은 아직까지 2세의 실패에 너무 엄격했다.

“현주와 설주 둘 다 잘 들어. 포실이가 좋아서 늘 끌어안고 함께 지내려는 건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너희가 좋은 뜻으로 한 행동이 포실이에게는 힘들 수도 있어. 그걸 기억하는 게 제일 중요해. 사람도 마찬가지야.”

현주가 물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면, 엄마와 아빠도요?”

“응. 상대가 화를 내거나 보통 때와 다른 반응을 보이거든 조금 물러서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어. 혹시 내 행동이 상대를 불편하게 한 건 아닌지, 또는 상황이 평상시와 다른 건 아닌지. 그런 걸 예의라고 해. 예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동물과 사람 사이에도 있어야 해. 예의가 부족하면 잘못으로 이어지니까.”

현주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에 금세 표정이 풀어졌다. 그리고 포실이가 쉴 수 있도록 터치스크린을 통해 퍼즐을 풀기 시작했다.

설주는 소형 카메라를 통해 현주를 보면서, 스피커를 이용하지 않고 서낭에게 질문을 보냈다.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는요?’

‘우리에게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어. 인간은 학습 효율이 무척 떨어지는 존재니까, 모두가 납득하기까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기다려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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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을 돕게 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그 기법 가운데 상당수는 인간의 학습-보상 기제를 알고리즘에 적용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비영리 인공지능 연구 기업인 OpenAI는 최근 인공지능 강화학습에 새 기법을 적용했다고 발표했는데, 이 기법 역시 인간의 학습 방법을 모델로 삼고 있다.

우리는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두발 자전거를 처음 타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는 건 실패다. 그 원인을 물리적으로 분석하진 못하지만, 우리는 거의 무의식에 가까울 정도로 손과 발에 들어가는 힘과 몸의 기울기를 조절해서 결국 두발 자전거를 제대로 타게 된다.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실패로 간주하고 재시도를 안 한다면 결국 자전거는 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실패에도 보상이 필요하다.

OpenAI는 Hindsight Experience Replay(HER)라는 알고리즘을 새로 도입해 인공지능의 실패에도 보상을 부여해 보았다. 그리고 HER는 실제로 강화학습에 도움을 주었다. OpenAI 측의 발표대로 아직 학습 효율이 주목할 만큼 상승하진 않았지만, 이 알고리즘 역시 아직 개발 초기이니 더 많은 실험 결과를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결과보다도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를 되새겨봐도 좋을 것 같다. 인공지능 알고리즘도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는 마당에, 우리는 새로운 시도와 실패에 얼마나 관대하고, 그 가치를 얼마나 높게 사고 있는가. 

처음부터 타고난 학습 방법을 우리는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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