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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기반의 새로운 SNS가 세상을 장악했다.

계정을 가진 이들은 누구나 그 SNS를 통해서 경제적 부수입을 얻었다. SNS 회사 측에서는 간단한(너무나 간단해서 가입 초기에 그냥 체크 한 번 하고 지나가 버린 뒤 곧 잊게 만드는) 절차를 통해 누구든지 자기가 올린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게 해놓았다.

조회나 공유 횟수에 따라 1원 단위까지 가상통화로 인센티브를 제공받았는데,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한 상당수 청년들에겐 무시 못할 수입원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문자가 아닌 이미지가 기본이었기에 모두들의 콘텐츠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들과 수월하게 공유되었다. 문자조차도 인공지능이 다 번역해 주었기에 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시장이 크다 보니 어설프고 별 내용도 없는 콘텐츠조차 어느 정도의 수입을 창출했다. 사실 아마추어들끼리 콘텐츠 공유를 통해 서로서로 품앗이하는 수천만 개의 온라인 동아리가 이 거대한 글로벌 신경제 체제를 지탱하는 한 축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다.

- 피고는 원고의 얼굴을 그대로 모사한 로봇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상 부부처럼 지냈습니다. 그러고는 그 로봇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들을 SNS에 올렸습니다. 피고는 개인적으로 했던 일이기에 사생활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명백하게 원고의 인격권, 초상권을 침해한 것입니다.

- 이의 있습니다. 원고는 자신의 SNS를 통해 얼굴 모습을 포함한 상당 분량의 신상 정보가 담긴 콘텐츠들을 전체 공개로 올렸으며 그를 통해 일정한 경제적 수입도 얻었습니다. 즉 자신을 일종의 상품으로 삼아 경제 활동을 했으므로 공인(公人)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따라서 원고와 얼굴 모습이 같은 로봇을 소유하거나 가상 부부로 지낸 것에 대해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입니다.

- 피고가 그런 로봇을 소유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상황을 대중들에게 공공연히 드러내 보인 것이 잘못입니다. 게다가 피고 역시 그런 콘텐츠들로 경제적 수익까지 얻지 않았습니까? 원고의 동의 없이 원고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들어 가상 부부 관계를 맺고, 그런 모습을 SNS에 전체 공개하는 것이 용납될 경우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속출해서 엄청난 사회 혼란을 야기할 것입니다.

- 경제적 수익에 대해 적절한 배분을 요구한다면 응할 의향이 있지만,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금 시대에 SNS 활동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원고와 같은 일을 겪는다면 수익 배분율을 정해서 합의한 뒤 계속 그런 SNS 활동을 하도록 용인할 것입니다.

이 사건은 결국 쌍방간의 합의로 종결되었으나 합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피고는 문제의 로봇과 함께 찍은 이미지를 더 이상 올리지 않았으나 여전히 소유한 채 부부처럼 지낸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한편 이 사건 이후 문제가 된 SNS에 가입할 때 ‘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는 항목에 동의하지 말자는 운동이 일었다. ‘현대인의 영혼이 SNS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구호가 떠올랐고, 말초적이고 충동적인 사고를 조장하여 인류 전체를 반지성적, 반인륜적 흐름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주장도 대두되었다.

그러나 적은 금액이나마 안정적으로 수입을 얻고 있던 대다수의 청년들은 이런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차피 인간은 경제 활동을 해야만 삶을 지속할 수 있는데, 이런 체제가 20세기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비교해서 특별히 더 나쁠 게 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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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터넷 플랫폼, 이미지와 동영상 위주의 거대 SNS, 가상통화, 그리고 이들에 기반한 대중문화, 또 온라인으로만 끈끈하게 형성되는 인적 네트워크까지…. ICT(정보통신기술)가 새롭게 재편해 나가게 될 근미래의 사회 경제 체제는 이제껏 인류가 경험해본 적 없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사회 윤리적인 상상력이 크게 요구될 것이고, 아마 적잖은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겨우 정착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결정적인 변수는 바로 청년층, 즉 21세기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이다. 이들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겪는 환경은 딱 두 가지이다. 호흡하는 공기라는 자연적 환경과 ICT라는 인공적 환경. 이들은 서로 이질적인 이 두 가지 환경에 금세 적응하면서 차츰 그에 맞는 감수성을 키워나가게 된다. 그것은 우리 기성세대들보다 훨씬 더 과학기술에 친화적이고 수용적인 정서일 것이다. 이들이 세계의 중추를 담당하는 21세기 중반 이후 세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보기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그 무엇이 되지는 않을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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