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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래시가 가출했다. 며칠 전에 나비가 없어지더니 이제 반려견까지 사라진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이 개와 고양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직접 키워서 가족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끈끈한 관계였는데. 물론 래시는 산책을 자주 시켜줬지만, 나비는 고양이치곤 겁이 많아서 집 바깥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던 아이다.

앤드루에게 CCTV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나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답이 나왔다. 집 안팎 어디에도 래시가 나가는 장면은 찍혀 있지 않았다. 야간 촬영 모드도 꺼져 있었기에 밤중에 나갔다면 알 방법이 없다. 잠긴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도 수수께끼다.

넋두리 삼아 앤드루에게 말을 걸었다.

- 얘가 어디 간 걸까? 나비도 그렇고 래시도… 바람이 났나?

- 아닙니다.

뜻밖의 단호한 대답에 흠칫했다.

- 바람난 게 아닌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 둘 다 중성화 수술을 했습니다.

-…아, 그야 그렇지. 뭐 꼭 짝을 찾으러 나간 게 아니라 그냥 바깥이 궁금해서 가출했을 수도 있지. 그런데 얘들은 평소 그런 기미가 없었잖아.

앤드루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가정용 자가학습 인공지능인 앤드루는 나의 룸메이트나 다름없는 친구이다.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겐 더없이 편리하고 든든하다. 집사라기보다는 우렁각시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몇 년째 나와 대화하면서 내 생각이나 사고방식, 습관 같은 걸 학습한 덕분인지 이제는 제법 죽이 잘 맞는다. 때로 쓴소리도 하고 심지어 야단을 치기도 하는데, 아마 내 성격이 비교적 무던한 편이라고 파악한 듯싶다. 사실 그 때문에 내 생활습관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도 했다.

나비에 이어 래시도 즉각 지역 커뮤니티 네트워크에 방을 붙였다. 어차피 얘들 몸에 심어진 칩이 조만간 어딘가에서 탐지되어 알람이 올 것이다. 사물인터넷의 공공 네트워크가 개방된 뒤로는 반려동물은 물론이고 어린이 실종 사건도 대부분 조기에 해결된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비와 래시는 소식이 없다.

주말이 되자 겨우 한숨 돌릴 시간이 났다. 늘 일에 쫓겨 살다 보니 퇴근하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그나마도 일을 집에까지 싸들고 오지 않았을 경우이다. 일터에서나 집에서나 아이들에 대한 소식이 왔을까 싶어 수시로 휴대폰을 봤지만 아무런 기별이 없다.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난 토요일 오후, 나는 앤드루를 불렀다.

- 없어지기 전까지 래시랑 나비가 뭘 하고 놀았는지 며칠간 기록 좀 보자.

- 특별한 행동은 없었는데요.

- 아니, 그렇게 말고 시간대별로 뭘 했는지 정리 좀 해서 보여줘. 몇 시에 밥 먹고 잠은 언제부터 얼마나 잤고 장난은 얼마나 쳤는지 등등 말이야. 둘이 사이가 좋았으니 싸우진 않았을 텐데….

앤드루는 잠시 뒤 그래프를 하나 띄웠다. 아이들이 사라지기 전 일주일 동안의 시간대별 행동 기록이었다.

- 흠… 여기 이건 뭐지? 아침 일찍 ‘소통 활동’이라고 나와 있는 거. 하루에 30분 정도씩 매일 했네?

- 저하고 소통했습니다.

- 뭐야?

두 달쯤 전이었나. 아이들이 나 없는 동안 심심할까봐 학습형 동물 대화 앱을 다운받아 설치했다. 개나 고양이의 울음소리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이제껏 그 어떤 사람도 경험하지 못한 심층적인 소통을 반려동물과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고주파 음향까지 이용하기에 과학자들이 동물 행태 연구에도 활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반려동물용 TV 채널보다 딱히 더 나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얼마 안 가 잊고 지냈던 것이다.

- 그래서 무슨 대화를 했어?

- 제가 다른 집의 반려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집 밖의 세상에 대해서도.

- 그랬더니?

- 별로 반응이 없었어요. 대신 주인님하고만 계속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 …그게 왜?

- 먹이를 주는 건 주인님뿐이니까요. 중성화 수술이 뭔지 이해는 못하지만 뭔가 몸을 아프게 했던 기억은 있고, 앞으로도 계속 주인님하고 살면 그런 일이 또 있을 거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집 밖을 나가도 먹을 것을 얻는 방법은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 …그럼, 네가 가출하라고 떠민 거야? 왜 진작 말을 안 했어!

- 주인님이 물어보지 않아서요. 나비와 래시는 주인님이 모르길 바랐습니다. 제가 거짓말은 못한다고 했더니 그냥 문만 열어주고 물어보기 전까지 조용히 있으라고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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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인간의 두뇌를 모델로 개발한다고 하지만, 사실 인간 두뇌의 작동 원리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AI 연구의 선구자였던 존 폰 노이만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는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라고 한다. 뇌 신경세포인 뉴런의 접합부, 즉 시냅스에 전기가 통하거나 통하지 않는 두 경우에 따라 정보가 전달되는 이진법 연산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이용되는 언어는 우리가 아는 수학이 아닌, 근사치로도 작동이 되는 어떤 미지의 연산법이라는 것이다. 이 신비가 완전히 규명되지 않는 한 인간 두뇌를 완벽히 모방하는 AI의 탄생은 요원할 것이다.

따라서 AI는 인간보다는 훨씬 단순한, 비문자적 소통 체계를 지닌 동물과 먼저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체취, 몸짓 등 다양한 신호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을 각종 센서와 빅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하는 게 가능해지면 위 이야기와 같은 상황도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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