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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진만이 전봇대를 가리키며 정용을 불렀다.

“이것 좀 봐봐.”

정용은 힐끔 전봇대를 바라보았다. 싼 이자, 신축 빌라 분양 같은 광고지 사이에 누군가 방금 붙이고 간 것 같은 깨끗한 전단지 한 장이 나부끼고 있었다.

 

- 집 나간 고양이를 찾습니다.

이름: 미나(2살) 노랑둥이. 눈은 호박색. 사고로 인해 꼬리가 짧음.

미림아파트 7단지에서 실종.

사례금 100만원

 

“이게 뭐?”

정용은 다시 돌아서려 했지만, 진만이 그의 팔을 잽싸게 잡았다.

“사례금이 백만 원이나 된다고.”

전단지에는 사례금 아래 ‘가족 같은 고양이입니다. 꼭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백만 원이든 천만 원이든 그게 뭐? 주인도 못 찾는 걸 우리가…”

정용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진만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그거 몰랐구나? 나 이거 전문가야.”

말을 하는 진만의 눈빛은 근래 들어 가장 진지해 보였다.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용과 진만은 그날 밤부터 바로 아파트 주변 수색에 들어갔다. 화단에서부터 지하 주차장까지, 정용은 진만을 따라 에어컨 실외기 주위나 주차된 자동차 바퀴 근처를 건성건성 살폈다.

“진짜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본 적 있는 거야?”

“말도 마.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거든. 걔가 고양이를 키웠는데…”

진만은 지하 주차장 배수구 근처에 플래시를 비춰가며 ‘미나야, 미나야’ 작은 목소리로 불러댔다.

“걔네 할머니가 약간 치매기가 있었나 봐. 자꾸 집 밖으로 나가면서 문을 열어놓고… 그러니 고양이가 가만히 있었겠어? 그 고양이를 내가 매번 찾아줬다는 거 아니야.”

“그럼, 그 여자애하고도 잘 됐겠네?”

“걔가 고양이를 찾아주면 도통 집 밖으로 나오질 않아서…”

진만은 말끝을 조금 흐렸다.

“그건 그렇구… 어떻게 그렇게 고양이를 잘 찾았던 거야?”

“간단해. 겁먹은 고양이처럼 생각하면 되는 거야. 겁먹는 거는… 그건 내가 전문가니까…”

첫날, 그들은 새벽 네 시까지 미림아파트 주위를 수색하다가 철수했다. 둘째 날에는 오후 여섯 시부터 고양이를 찾아다녔는데, 진만은 그 전에 동네 다이소 매장에서 쇠로 된 고양이 포획틀을 사오기도 했다.

“백만 원이면 새 고양이를 사고도 남지 않나?”

정용이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리자 진만이 바로 말을 받았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니까… 돈이 문제가 아닌 거지.”

정용은 잠시 침묵했다.

“너는 실종되면 가족들이 찾을 거 같아? 사례금 얼마나 걸 거 같아?”

“나? 나는… 나는 아마… 고마워할 걸…”

그들은 그 뒤로 서로 말이 없었다. 계속 ‘미나야, 미나야’ 화단 쪽을 살피면서 부르기만 했다. 술 취한 남자 한 명이 지나가다가 그들을 보고 ‘미나는 이제 없어, 이 자식들아! 떠난 여자라고!’ 하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들은 말없이 그 남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셋째 날 밤 열 시 무렵 그들은 아파트 단지 뒤편, 야산과 이어진 체육 시설 근처 경계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전단지 사진에서 본 것처럼 등 주위에 노란색 털이 나 있는 작은 고양이였다. 무작정 고양이를 향해 달려나가려던 정용을 진만이 막아섰다.

“겁먹은 애들한테 달려가면 더 숨어버려. 그럼 영영 못 찾는다고.”

진만은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최대한 조심조심 경계석 근처로 다가가 천 원짜리 소시지가 놓인 포획틀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오금 펴기 기기에 앉아 가만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정용이 묻자 진만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들은 계속 포획틀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켰다. 별이 많은 밤이었다. 차라리, 그냥 아르바이트를 하고 말지, 정용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마음을 바꿔 먹었다. 고양이만 잡으면 세 달 치 자취방 월세를 한꺼번에 버는 셈이었다. 제발 조용히 포획틀로 들어가 주렴, 고양아. 그래도 넌 가족이 애타게 찾는 몸이잖니… 우리는 가족이 피하는 몸이란다… 정용은 까무룩까무룩 졸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고양이가, 노란둥이가, 포획틀 안으로 걸어 들어간 것은 새벽 네 시 무렵이었다. 진만이 포획틀을 향해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정용도 정신을 차렸다. 고양이는, 놀라고 겁먹은 표정으로 얌전히 포획틀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새벽 네 시였지만, 진만은 포획틀을 든 채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고양이 찾으신다는 분이죠?”

“네? 고양이요? 무슨 고양이요?”

전화를 받은 것은 사십 대 초반의 여자였다.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

“저희가 방금 그 고양이 찾았습니다. 바로 데려다주려고 하는데…”

수화기 너머 여자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곤 이내 말을 꺼냈다.

“저기요, 그 고양이 다시 풀어주세요.”

“네?”

“다시 풀어주시라구요. 그거 우리가 일부러 놓아준 고양이예요.”

진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용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분명 전단지에는 사례금도 있고 해서…”

“그거 그냥 우리 딸 아이 때문에 적어 놓은 거예요… 우린 이제 고양이를 키울 여력이 안 돼요…”

“저기 그래도 저희가 며칠 밤을 애써서…”

진만이 무슨 말을 더하려는 순간, 저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진만과 정용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가만히 포획틀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는 까딱까딱 포획틀 안에서 졸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냥? 정용은 고양이에게 그렇게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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