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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민어

opinionX 2019. 7. 25. 11:17

해마다 이때면 특정 주제에 따른 ‘원고 청탁’이 돌아온다. 엉겁결에 받은 전화, 대뜸 ‘복날 먹는 거’로 써 달라는 말이 건너왔다. 그 ‘먹는 거’ 가운데 ‘민어’는 이미 정한 바였다. ‘이열치열’로 기둥 세우고, ‘반가 음식’에 ‘복달임’으로 벽 치고 지붕 인다는 속내를 바로 알아챘다. 갸우뚱하다 답했다. “복달임의 핵심은 지역과 공동체의 휴식,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땡볕 피하기예요. 지혜는 그런 데 있어요. 오로지 먹는 소리면 복달임의 참모습을 말할 틈이 없죠. 휴일의 휴식에 별미 있으면 더 좋겠죠. 삼복 중의 식재료와 음식이 다 복달임이 됩니다. 민물잡어가 그중 만만했고, 잘 익은 과일, 과채가 오히려 청신합니다. 있는 대로 수박, 참외 나누어 먹고 버무리나 개떡쯤이 휴식의 별미로 넉넉했어요.”

말 나온 김에 민어 이야기나 좀 하겠다. ‘민어(民魚)’는 예전에 많이 잡힐 때에는 보통 사람들이 반찬거리에서 제수에 이르기까지 두루 쓴 어물이다. 민농엇과, 대구과, 민어과 물고기를 두루 이르는 한자 이름을 쓰기도 했다. 정약전(1758~1816)은 <자산어보>의 민어 항목에서 부세를 민어의 아종으로 여겼다. 예전에는 지역에 따라 민어뿐 아니라 민어를 닮은 살점 넉넉한 흰살 생선을 두루 민어라 했을지 모른다. 일본 문헌에서도 실물과 어휘를 둘러싸고 조선과 비슷한 뒤섞임이 확인된다. 한편 <난호어목지>는 민어의 다양한 쓰임과 인기를 기록하면서 “무릇 바닷물고기로서 수요가 큰 것 가운데 이 물고기처럼 요긴한 것이 없다”고 했다. 다 떠나서, 민어는 맛이 좋다.

뼈는 끓이면 끓일수록 짙고 깊고 풍미 그윽한 곰국을 낸다. 기름질(oily) 뿐 아니라 개운한 지방질의 풍미는, 영어를 빌리면, 잘 익은 버터처럼 녹진하다(buttery). 여기에 넉넉한 살점까지 어울린 민어탕은 과연 진미이다. 횟감으로 빠지겠는가. 결을 살린 숙수의 칼질이 연출한 민어회는 씹을수록 기분 좋은 촉감이 잇새를 간질인다. 간질이면서 고소함을 뿜는다. 수분을 적절히 제어하면? 잘 말린 약대구의 예도 있지만, 해풍과 일광에 마른 민어의 감칠맛은 그야말로 폭렬하는 순간이 있다. 찌면 찐 대로 바닷내와 손잡은 달큰함이 배가된다. 구우면 소금이 밀어내고 증폭한 ‘buttery’한 풍미가 감칠맛과 손잡고 거침없이 먹는 이의 미각에 육박한다. 규모 있게 뜬 포에 달걀옷을 입혀 지진 민어 전유어를 보고 있으면, 음식이 이렇게 얌전하고 어여쁠 수가 있구나 싶다. 부레를 포함한 내장은 내장대로 회에 탕에, 또 데쳐 두루 먹었다. 알집으로는 알젓과 어란으로 변신했다. 굴비처럼도 가공하고, 북어처럼도 가공했다.

민어는 여름에만 맛있는 어물이 아니라, ‘여름에도’ 맛난 어물이었다. ‘복달임에도’ 좋았다. 누구에게나 고마운 어물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먹방을 타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는 민어를 두고 복날 먹지 못하면 안될 것처럼 굴었다. 2000년대는 호들갑 고착의 시기이다. 1960년대 이후 보편화한 복달임 음식인 삼계탕과 구별되는 새 기삿거리, 새 방송용으로 요긴했던 것일까. 대중매체는 자연 조건이 바뀌면서 덜 잡히고, 가공의 다양성도 떨어지면서 값이 오른 민어에 ‘고급’ ‘반가 음식’을 뒤집어씌웠다. 그뿐이었다. 앞서 말한 민어의 미덕은 몸집 큰 흰살 생선에 대체로 깃들어 있다. 농어·대구·보구치·수조기·참조기·부세가 어디 빠지는 자원인가. 크면 큰 대로 깊은 맛이 있고, 상대적으로 작으면 염장하거나 건조하거나 반건조해 다시 맛을 들여 유통해 먹었다. 오늘날에는 그래도 서남해 산지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이 내력과 가공과 조리와 관능의 세부 그리고 덜 잡히면서 잠깐 잠복한 민어의 가능성은 먹방이 궁금해하는 바는 아닐 테다. 한여름 보통사람의 휴식은? 병어·붕장어·뱀장어·전복·자두·복숭아·보리·밀·옥수수·토마토·감자·고추·호박·가지·오이·연·칡에 이르는 이 철의 먹을거리와 그 음식 문화는? 또한 먹방용 화제는 아닐 테다. 먹방이 궁금해하지 않는 바, 굳이 써 보인다. 복날 앞두고 받은 원고 청탁은 정중히 사양했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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