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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이 있다. 칼럼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신문에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힘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이 없고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서만 세상사와 그에 대한 의견을 접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저널리즘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가 저 직함을 걸고 으스댄다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럼니스트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시대가 변한 것이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불현듯 칼럼 쓰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009년부터 칼럼을 썼고, 칼럼집만 두 권을 냈다. 근 10여년을 해온 일인데 언제까지 이럴 셈인가라고 고민하다보니, 최근 꽤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론 칼럼이 쉬운 글은 아니다. 칼럼이라는 글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제약은 분량과 마감일이다. 칼럼의 분량은 많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어떤 것을 넣고 어떤 것을 빼야 하는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조사를 바꾸고, 몇 편의 글이 필요한 이야기를 어떻게 한 문장으로 축약할 것인지를 두고 골몰해야 한다.           

게다가 칼럼을 쓰는 날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시의성이 없는 이야기라면 상관없겠지만, 산재하는 이슈들 중 어떤 것을 골라서 이야기할지도 매번 결정해야 한다. 퇴고를 마치고 마침내 원고를 보내는 새벽이 오면 잠시 해방감에 젖었다가, 나중에 신문에 실린 글을 보며 후회와 반성을 하는 것까지가 하나의 사이클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주나 월 단위로 반복된다. 

하지만 새로운 어려움들은 이런 통상적인 어려움과는 결을 달리한다. 칼럼은 기사가 아니지만 저널리즘의 일부이고, 거짓된 사실이나 과장이 있어선 안된다는 저널리즘의 최소한의 원칙을 공유한다. 그런데 이 팩트 체크가 요즘 고역이다. 칼럼리스트는 기자가 아니므로 대체로 팩트 체크는 언론들의 보도에 의존한다. 그런데 같은 사건에 대해 언론사마다 이야기가 다른 것은 예사이고, A라고 보도되었던 내용이 알고 보니 B라는 식의 일들도 걸핏하면 벌어진다. 이 때문에 여러 언론사의 기사들을 복수로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기사의 원출처가 되는 자료들까지 뒤져봐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잘못된 사실들이 칼럼에 섞여 들어가는 일이 생기고야만다. 

게다가 요즘에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칼럼니스트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트위터, 페이스북을 비롯한 수많은 SNS들에는 각계의 전문가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생긴 일들에 대해 전문지식이 담긴 글들을 생산해낸다. 굳이 전문지식이 아니더라도 경청할 만한 좋은 관점과 의견들이 ‘좋아요’와 ‘공유’를 타고 돌아다닌다. 글이 싫다면 유튜브에 가보라. 수많은 전문가들이 자기 이름을 건 채널을 개설해놓고 쉬지 않고 방송을 하고 있다. 그러니 굳이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 어느 칼럼니스트가 이 주제에 대해 쓴 칼럼을 봐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어지게 된다.

물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누군가는 좋은 칼럼을 쓴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재치로 웃게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면서 말이다. 또 칼럼이 언론의 지면에 실리는 이상 그것은 공적인 말로써 기능한다. 때로는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곧 사라질 과거는 아닌가 고민하다가도, 내 글이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글일지 모른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다. 10년이나 계속 기용을 해주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속편한 생각도 없지는 않다.

칼럼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마지막 문단이다. 뻔한 교훈적인 말이나, 의미 없는 선언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뻔한 선언과 의미 없는 교훈으로 끝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주어진 지면이 다 채워진 관계로 이만 줄인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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