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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됐다.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하향된 지 15년 만의 진일보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입맛이 찝찝할까.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한 채 선거제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라는 최대 쟁점에 묻혀 덤처럼 통과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쨌거나 통과됐으면 그만일까? 그러기엔 이 의제의 잠재력이 아깝다.

치열한 논쟁의 주제는 사실상 딱 하나였다. ‘만 18세는 선거권을 행사할 만큼 정치적으로 성숙한가?’ 선거에 참여하려면 정치적으로 성숙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주제다. ‘그렇다’와 ‘아니다’라는 쪽이 치열하게 맞붙었지만 접점 없는 논쟁은 공회전만 반복했다.

그런데 만 19세를 넘어가면 정치적으로 충분히 성숙해지는가? 이 질문이 먼저 던져져야 했다. 토요일 저녁 서초동에 선 40세 ㄱ씨는 같은 시간 광화문에 선 60세 ㄴ씨를 정치적으로 성숙하다고 인정할까? 그 반대의 경우는? 같은 시간 어디에도 서기를 거부한 30세 ㄷ씨는 그들 모두의 정치적 성숙함을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소 서로의 정치적 미성숙함을 조롱하던 사람들이 만 18세 선거권 이슈에서는 한마음 한뜻으로 ‘만 18세는 미성숙하므로 선거권을 줘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풍경이라니, 우습고 미심쩍다.

‘실제로’ 성숙한지를 검증하려 들면 공회전하거나 삐걱댈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평가도 어려울뿐더러, 옳지도 않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나이라는 기준만 만족하면 누구든 평등하게 1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보통·평등선거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 원칙이 중요하다는 말을 다시 하기엔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렇게 짧지 않다고 믿는다.

따라서 선거권에 기준이 필요하다면 ‘실제로’ 성숙해지는 나이가 아니라 ‘제도적 관점’에서 성숙해졌다고 간주할 수 있는 나이일 터다. 제도적으로 고안된 어떤 생애주기를 통과하면 선거권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의무교육 과정은 그 기준이 될 만하다. 의무교육은 국가가 의무적으로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의미도 함께 있다. 교육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규정한 교육기본법에 따르면 교육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을 이념으로 한다. 그렇다면 의무교육 과정을 통과하는 순간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췄다고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2020년의 민주공화국이라면 그 정도 자신감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통상적으로 의무교육 과정으로서 중학교를 마쳤다고 간주되는 만 16세까지 선거연령을 낮추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제도교육은 좋은 대학에 진학해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과정에 그쳐왔고,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는 너무 오랫동안 무관심했다. 만 18세든 만 19세든, 아니면 그 이상 나이 먹은 사람들이든, 제도의 관점으로 볼 때는 민주시민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건 똑같다. 우리 사회는 시민교육조차 ‘사교육’ 또는 ‘각자도생’에 맡겨왔다.

이번 선거연령 하향으로 고등학생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교육부를 필두로 일부 지자체 교육청들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참정권 교육을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들을 내놓고 있는 것 같다. 고민을 확인했으니 반갑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순서가 틀렸다. 만 18세가 선거권을 갖게 되었으니 그에 맞춰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사후대책이 아니라, 의무교육 과정에 민주시민교육을 확대 편성함으로써 선거권을 더 하향시키겠다는 포부가 필요하다. 

시민·유권자로서 알아야 할 필수적인 교양들을 커리큘럼으로 갖춘 시민교육 과정이 강화되고, 그 과정의 이수 시기가 선거연령의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유권자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도 성장하도록 하는 교육까지 고민한다면 금상첨화다. ‘이쯤에서 한 살만 낮춰주자’는 정치적 타협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강남규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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