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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약 1만1000년 전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 인구는 약 7800배 늘었다. 약 100만명이던 당시의 인구가 현재 거의 78억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세계 인구를 집계하는 영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는 1초에 서너 명씩 늘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농경이 시작된 사건을 일컫는 신석기 혁명은 사실 석기와는 깊은 관련이 없다. 오히려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사육하게 되면서 한곳에 머물러 살게 된 생활 양식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편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먹거리를 찾아 수렵과 채집을 하는 대신 인간 집단의 울타리 안에 동물과 식물 일부가 편입된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인간화된 생명체의 규모도 커졌다. 2018년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론 밀로는 인간과 가축의 총무게가 야생동물의 30배가 넘는다는 연구 결과를 미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 무게로는 돼지와 소, 숫자로는 닭이 단연 모든 것을 압도한다.

인간의 세력권이 넓어졌다는 말은 야생동물이나 식물에는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다. 한때 북미를 포효하던 수천만마리의 아메리카들소는 1884년 325마리로 줄어들었다. 버펄로라고 불렸던 대형 포유류인 이들 들소는 오랫동안 생태계를 지탱하면서 북미 인디언들에게 그리고 나중에는 유럽인들에게 고기와 가죽 그리고 비료를 공급해왔다. 하지만 인류는 북미에서 들소의 흔적을 거의 지워버렸다. 현재 보호구역에서 사는 들소는 수십만마리에 이르지만 야생 들소라 이를 수 있는 것들은 5000마리도 채 되지 않는다.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메리카들소가 과거의 생태적 영광을 회복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들소는 사라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스탠퍼드 대학의 폴 에를리히 박사는 최소한 543종의 육상 척추동물이 20세기에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대규모 멸종의 징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알래스카 주변 바다를 누볐던 스텔라바다소의 멸종은 생태계에서 생명체 간의 균형이 깨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사례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바다소는 주로 해조류를 먹는다. 풀일망정 오랜 시간 잔뜩 먹어서 바다소는 10m까지 몸집을 키웠다. 대체 이들 바다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바다에 사는 수달이라는 뜻의 해달은 조선시대 왕의 진상품으로 썼다는 수달피처럼 가죽을 얻으려는 사냥꾼들의 맞춤한 표적이었다. 바닷물에서 체온을 유지하고자 해달도 양질의 털과 가죽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파도에 누워 먹이를 배 위에 놓고 돌로 깨 먹을 정도로 영리한 해달을 사냥꾼들이 포획하면서 그 개체수가 현저히 줄자 의외로 성게 집단이 성세를 누리게 되었다. 성게가 해달의 주식이었기 때문이다. 해조류를 두고 바다소와 성게는 서로 경쟁 관계다. 성게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바다소의 먹거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온순한 바다소는 고기 맛이 좋고 기름을 얻을 수도 있어서 사람들이 점찍은 새로운 사냥감이 되었다고 한다. 우연한 두 사건이 겹치면서 스텔라바다소는 북태평양 바다에서 절멸했다. 인간이 환경에 가하는 압력에 못 이겨 바다소가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이다.

폴 에를리히 박사는 현재 지구 생태계에서 ‘벼랑 끝에 선’ 척추동물 515종이 멸종 직전의 상태라고 진단했다. 전체 개체수가 1000마리가 되지 않는 육상 척추동물 종이다. 이들은 주로 아시아,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의 열대, 아열대 지방에 집중되어 분포하기 때문에 우리 시야에서 어느 정도 비켜나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탄없이 인간의 주거지를 확대하고 동식물 서식처를 파괴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천루는 하늘을 찌르고 갈 곳 잃은 물뱀은 아파트 계단에 출몰하며 먹을 것 없는 반달곰이 하릴없이 도심을 배회한다.

지구 생태계를 대하는 이런저런 인간의 활동은 주로 화석연료의 연소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인간 활동의 최종 결과물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일부 식물학자들은 대기 중 늘어난 이산화탄소가 식물 광합성의 양을 늘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지구 역사 내내 대기권 내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인간이 적극적으로 산업활동에 가세하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식물 입장에서는 충분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광합성에 쓸 재료가 늘어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집약농이 실시되면서 토양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쌀과 밀의 작황은 좋아졌지만 곡물 안에 든 비타민과 항산화제의 양이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질소나 황, 인, 칼슘과 같은 무기 염류의 양이 심각할 정도로 줄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런 결과에 바탕을 두고 과학자들은 탄수화물의 양은 늘지만 필수 영양소가 ‘희석’되는, 다시 말해 곡물의 품질이 떨어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세 끼 밥을 먹어 배는 불리되 아연이나 철 혹은 단백질이 부족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초식동물이나 곤충들도 이런 처지를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메뚜기도 꿀벌도 그 수가 줄고 있다.

식물과 동물이 함께하는 지구 생태계에 사사건건 개입해온 인간의 활동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우리는 정말 아는 게 없다. 과연 우리는 후대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물려줄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걸터앉은 나뭇가지를 써걱써걱 톱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ghimh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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