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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독도에서 설악산과 소백산을 거느린 태백 준령을 육안으로 볼 수 있을까? 혹시나 호사가의 카메라에 잡힌 영상이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없다.     

직선거리가 가장 짧은 경북 울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200㎞가 넘는다. 그 정도 떨어진 곳까지 보이려면 태백산맥이 아주 높거나 아니면 지구가 편평해야 할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이 되었으니 문제는 태백 준령의 높이에 있다. 이렇게 단정 지어 말하는 까닭은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히말라야 만년설을 찍은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사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도사람들이 일을 작파하고 모두 칩거하는 바람에 인도인들도 30년 만에 히말라야산맥을 다시 볼 수 있었다는 넋두리가 사족처럼 붙었다. 200㎞ 떨어진 펀자브 사람들에게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려면 히말라야산맥처럼 크고 높아야겠지만 한편 공기도 티 없이 맑아야 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외웠던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는 8848m였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 그 산이 더 높아졌으리라 추측한다. 지금도 인도대륙이 일 년에 약 5㎝ 속도로 유라시아를 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인도대륙은 마다가스카르섬과 붙어 있었고 그전에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남극이 한데 연결되어 있었다. 이른바 곤드와나라고 불리는 초대륙이다. 버성긴 초대륙이 나뉘고 북상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남극은 거의 제자리에 머물렀고 나머지 대륙은 서서히 움직였지만 지각의 두께가 얇은 인도대륙은 일 년에 거의 20㎝ 속도로 북상했다. 유럽과 미대륙이 일 년에 약 2㎝씩 멀어지는 것과 비교해보면 그 얼마나 빠른 속도인가? 그렇긴 해도 이는 2000만년이 넘는 긴 여정이었다. 소행성 하나가 유카탄반도에 떨어지고 그 충격으로 해일과 화재가 지구를 강타하면서 공룡이 멸종했던 약 6500만년 전 인도는 이미 장도에 올랐었다. 약 5000만년 전쯤 형성된 히말라야산맥은 여전히 북진 중이다. 따라서 에베레스트산은 더 높아지겠지만 모난 돌이 정 맞듯 높을수록 침식 작용이 활발한 탓에 지금은 그 누구도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한때는 적도 아래 있었던 대륙이 북상을 하게 되면서 현재 북반구는 지표면의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 공룡이 사라진 지구에 인간의 조상인 포유동물이 득세하기 시작한 시기도 이즈음이다. 미국의 지질학자 도널드 프로세로는 공룡 이후의 세계를 기술하면서 기후가 끊임없이 요동치고 빙하기가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지중해도 말랐다가 차오르기를 반복했고 지금은 얼음이 덮인 극지방도 악어가 노닐 만큼 따뜻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산운동에 따른 활발한 풍화작용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줄어들면서 점차 춥고 건조한 날이 이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식물계에 커다란 두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하나는 숲이 열리고 초본(草本) 식물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나무에서 생활하던 인류의 조상도 땅을 딛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마 어느 순간에 직립보행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지구상에 활엽수가 등장한 것이다. 산맥을 타고 오르면서 비를 뿌린 건조한 바람이 산 너머 동네에 건기를 몰고 오는 일이 잦아졌다. 활엽수는 강수량이 줄어든 데 대한 적응의 결과였다. 물이 줄면 뿌리로 흡수할 지하수도 덩달아 줄어들기 때문에 설사 다른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식물은 광합성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식물이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이렇게 체질 개선에 성공한 활엽수가 천천히 북상하면서 점차 차가운 지역에도 적응을 마치고, 잎의 표면적을 최대로 줄여 물 손실과 냉해를 줄인 침엽수의 활동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라. 봄은 지난해 떨어뜨린 잎을 새롭게 틔워내고 본격적으로 광합성을 맞이할 채비를 부산스레 차리고 있다. 꽃을 피우는 일도 그렇지만 잎을 피우고 유지하는 데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므로 잎을 떨구는 일은 신중을 꾀해야 하는 전략이다. 사철나무를 비롯한 상록수들은 겨울에도 기회만 닿는다면 광합성을 수행한다. 따라서 뿌리에서 잎까지 물을 운반하는 물관의 구조도 상록수와 활엽수에서 각기 다르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록수도 가끔 오래된 잎을 떨어뜨리고 새 단장을 한다. 다만 활엽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남반구는 어떨까? 놀랍게도 거기엔 활엽수가 거의 자라지 않는다. 호주의 상징인 유칼립투스도 상록수이다. 태즈메이니아대학 데이비드 보먼 박사는 호주가 식물들의 성장에 좋은 조건을 가졌다고 말했다. 아웃백(outback)이라 불리는 호주 내륙 사막 건조지대조차 뇌우를 동반한 비가 자주 내린다. 따라서 북반구와 달리 식물이 잎을 떨어뜨릴 이유가 현저히 줄어든다. 게다가 한국 내륙 지방인 철원에서나 맞을 법한 혹독한 추위도 이들 해양성 기후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호주 본토에서 남으로 약 200㎞ 넘게 떨어진 태즈메이니아섬의 평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시간은 일 년에 이틀이 채 되지 않는다.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가 무척 적다. 데우기는 어렵지만 쉽사리 식지도 않는 바닷물이 남반구에 풍부한 탓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선 활엽수가 자라 태즈메이니아를 물들인다. 북반구가 연둣빛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그 순간 태즈메이니아 너도밤나무는 비로소 가을을 맞이한다. 푸른 바닷물과 더불어 노란 너도밤나무 잎들이 손을 흔들 듯 일제히 산들바람에 펄럭인다. 4월16일이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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