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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10일, 서해 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페리호가 침몰했다. 이 사고로 362명의 승객 중 292명이 사망했다. 70명만 구조되었다. 이틀 뒤인 10월12일, 유가족 500여 명은 군산공설운동장 앞 4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당국의 안일한 사태 수습 태도로 사체인양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며 밤늦게까지 항의농성을 벌였고, 경찰은 전경 4개 중대를 현장에 배치해 유가족들의 시내 진출을 막았다. 유가족의 시위를 막는 데 동원된 의경 중에 임종호씨가 있었다. 그는 가족을 살려내라며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울면서 그들의 시위를 저지해야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1년 뒤, 그의 딸 세희는 18살, 단원고 2학년이 되어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다 참변을 당했다. 그는 유가족이 되어 시위를 막는 경찰과 대치해야 했다. 21년 전의 그처럼 고개를 떨구고 유가족들의 시위를 막는 의경들을 보아야 했다.

“내가 유가족이 될 줄 알았겠습니까? 21년 전 페리호가 침몰했을 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했다면 내 딸 세희가 세월호에서 죽어가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10월31일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24분, 임경빈 학생이 최소한 7시간의 사투 끝에 침몰한 배 근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견 뒤 그는 맥박이 있었고 산소포화도 60%가 넘었다. 긴급히 이송해서 치료하면 살릴 수도 있던 목숨이었다. 곧 그를 이송할 헬기가 도착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헬기는 돌아가고 임군은 P정으로 옮겨졌고, 배를 5번이나 옮겨 태워졌으며, 오후 10시5분에야 목포 병원에 도착했고, 그는 이동 중에 사망했다.

살릴 수 있었던 목숨을 구조하지 않아서, 아니 선장과 일부 선원들만 표적 구조를 하고 다른 승객들은 방치해서, 그리고 계속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많은 승객을 죽게 했다. 수학여행을 가던 325명의 단원고 학생 중에 75명만 살아서 사망률이 76%였다. 일반인 승객은 104명이 탑승했는데 사망자는 28명, 사망률은 27%였다. 집중적으로 학생들이 죽었다는 말이 된다. 임경빈 학생은 119헬기가 돌아간 다음에도 그곳에 있던 두 대의 헬기를 타고 이송되었으면 20분 거리의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다. 그 두 대의 헬기는 해경청장과 해경 서해청장이 타고 떠났다. 그렇게 살릴 수도 있었던 목숨까지 사망자에 더해졌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은 진상규명의 첫 번째 과제로 왜 구하지 않았는가를 밝히는 것을 꼽았다. 최소한 가만히 있으라가 아니고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들라고 했으면 다 살릴 수 있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서 구조는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를 밝히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급격하게 배가 침몰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라고 한다. 선체조사위원회가 조사를 했지만 최종 결론에서는 두 개의 설만 내놓고 끝냈다. 과적이니 과승이니 고박 불량이니로 설명할 수 없는 급격한 침몰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세 번째로 요구하는 것은 무슨 이유로 박근혜 정권에서 진상규명 작업을 지독하게 막았느냐는 것이다. 해상안전교통사고에 불과하다면 왜 기무사, 청와대까지 동원하고, 유병언을 찾는다고 군대까지 동원하는 생난리를 치고, 진상규명 서명했다고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탄압까지 했던가에 대한 의문에 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어느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제 세월도 많이 지났으니 그냥 덮자, 지겹다고 말한다. 매주 주말 광화문광장에 태극기 들고 나오는 이들은 아예 ‘유가족충’이니 ‘시체 그만 팔라’고 모욕을 한다. 거기 유가족이 있다고 하면 더 악을 써댄다. 그들에게 당신들도 한번 당해 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도 사람이고, 그들의 자녀들도 소중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그들의 자녀, 후손들까지 안전하게 살자고 하는 일인데도 그렇다.

12일 전 독도에서 119헬기가 사고를 당해 동해에 빠져 7명이 실종됐다. 열이틀이 지난 오늘까지 3명의 시신을 찾고 아직 4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얘기는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혼선을 빚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참사 5년6개월이 지났어도,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세월호참사는 철저하게 진상규명도 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대충대충 덮고 지나온, 그래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묻어버리면 이처럼 비극적 재난은 반복된다.

진상규명도 하고, 책임자도 처벌하자고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올해 초부터 국민 고소고발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마침 검찰이 특별수사단을 구성해서 전면 재수사를 통해 한 점 의혹도 없도록 하겠다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조사를 충실히 하고, 수사권이 필요한 부분은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고, 검찰은 막강한 권한으로 강제 수사를 통해 낱낱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다짐했던 대통령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불러서 조사상황을 청취하고, 위원회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13일까지 국민고발인들을 모은다. 그리고 15일 검찰에 고소장과 고발장을 접수한다. 이번에는 진실규명을 위해 정부와 검찰, 위원회가 협조하면서 진실규명에 진전을 이뤄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게 해서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전부가 아니라도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세월호가 지겹다는 분들에게 유가족 임종호씨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나처럼 유가족이 되어서 후회하지 말고, 같이 힘을 모아서 진실을 규명해야 나 같은 유가족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거 아닙니까.”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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