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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우거진 깊은 산길을 무리 지어 넘어가는데 왠지 으스스합니다. 개중에 한 사람이 그럽니다. “으~ 이러다 뭐 나오는 거 아냐?” 다른 일행이 면박을 줍니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가뜩이나 무서워 죽겠는데.” 말 꺼내기 무섭게 저 수풀에서 호랑이 눈이 으르릉 노려보고 있습니다. 오금이 얼어붙었다 이내 봇짐이고 뭐고 팽개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정신 놓고 사방으로 죽도록 뜁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한 대로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함부로 말을 꺼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말이 씨가 되는 경우는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재수 없는 소리입니다.

말이 씨가 되는 경우는 두 가지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아무도 구체적인 생각을 한 적 없는데 누군가 생각의 단초가 될 말을 꺼내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생각을 더해 실행으로 옮기게 되는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카드빚 어쩌냐. 저런 입출금기 하나 뜯으면 되려나?” “야, 미쳤냐?” 해놓고 나중에 생각하니 막다른 길에 어쩌면 그 수밖에 없겠다 싶기도 하겠지요. 다른 하나는 말하자마자 정말 그런 일이 닥친 경우일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왠지 그럴 것 같은 기분을 다 같이 느낍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불안을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합니다. 말하면 정말 그렇게 될까 봐. 그런데 누군가 불안의 압력을 못 이기고 “이러다 진짜 ~하는 거 아냐?” 말을 툭 뱉습니다. 왠지 그럴 거 같은 불안한 예감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서 드는 것이라 결국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나중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입 모아 뭐라 하겠습니까. “야이 씨, 네가 재수 없는 소릴 해서 이렇게 됐잖아!” 책임 전가로 욕만 한 바가지입니다. 그렇게 말이 ‘씨’가 됩니다. 재수 없는 말은 타인에게든 자신에게든 재수 없는 결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맙시다. 말은 꺼내기 무섭습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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