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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소록도를 여러 번 간 적이 있었다. 알다시피 그곳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마을과 병원이 있다. 한센병은 지금은 치료법도 발견되어 있어서 치료만 하면 낫는 병이고, 병균 자체도 감염이 잘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둥병이라고 알려진 한센병은 우리가 어릴 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어른들은 문둥이가 보리밭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어린애들을 잡아서 간을 빼먹는다고 했다. 그런 편견은 증오를 낳았고, 그 증오는 문둥이들을 동네에서도 살 수 없게 쫓아냈다. 쫓겨난 문둥이들은 남도 땅 멀리 격리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있었던 소록도병원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인권침해는 해방 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지독한 편견 속에서 그들이 살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 이 병에 대한 유전을 막는다고 단종수술과 낙태수술까지 자행되었다. 병에 대한 무지가 부른 참극이었다.

소록도에 가면 병원 밖 중앙공원까지 갈 수 있다. 일반시민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출입금지 구역 안에 병원도 있고, 한센인들이 사는 마을들이 있다. 그 안에서 그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는데, 1960년대 그곳에 오스트리아 수녀님 두 분이 오셨다.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수녀가 그분들이다. 소록도의 한센인들이 기억하는 그분들은 비닐장갑도 끼지 않고 그들의 상처를 돌봐주었다. 한센인들은 그들에게 처음으로 인간적인 정을 느꼈다. 그래서 소록도의 한센인들은 그들을 수녀님이라고 하기보다는 할매로 불렀다. 그런 그분들은 2005년 편지 한 장만 남기고 홀연히 소록도를 떠났다. 암과 치매로 부담을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센병은 쉽게 전염되지 않는 병이고, 병에 걸렸다고 해도 치료를 받으면 낫는 병이다. 에이즈가 치료만 받으면 감기처럼 낫는 병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센병이든 에이즈든 사람들은 이 병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피하고만 싶어 한다. 그런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혐오는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이런 무지몽매함을 통해 그들을 사회 구성원에서 배제하고, 배제된 그들은 세상을 원망하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는다. 그럼 결과적으로 사회는 그런 병을 퇴치하는 게 아니라 그 병은 더 확산되게 된다. 

아마도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대하는 태도도 위의 사례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아직 이 전염병의 정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고, 이 병에 맞는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더욱이 중국 우한 지역이 봉쇄되었음에도 국제적으로 확산 속도가 빠르고, 2차, 3차 감염 사례도 발견되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다. 

지난달 말에 정부는 전세기를 보내 중국 우한 지역의 교민들을 국내로 데리고 왔다. 그들은 지금 안산과 진천의 국가시설에 격리 수용되어 생활하고 있다. 그들이 국내에 들어오기 직전에 아산과 진천은 집단행동을 하면서 교민들을 막겠다고 난리를 쳤다. “천안은 안되고 아산과 진천은 되는 거냐”는 반발이 일었다. 한 언론사의 선정적인 단독 보도가 일을 냈고, 다른 언론들이 받아쓰면서 일이 커졌다. 그런데 막상 교민들이 시설에 도착하는 그 순간 그런 반대 움직임은 사라졌다.

‘We are Asan(우리가 아산이다)’ ‘진천에서 안전하게 계시다 건강하게 돌아가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현수막과 팻말로 바뀌었고, 수용된 교민들을 응원하는 후원물품들도 답지하고 있다. 이렇게 분위기가 반전된 데에는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캠페인이 있었고, 해당 지자체장들이 교민들이 수용된 시설 앞에 임시 사무실을 내는 등으로 해서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언론들이 선정적으로 보도를 하면서 혐오를 조장했던 것과는 반대였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여러모로 위험한 상황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이에 대한 대책을 철저히 하고, 개인들은 손을 열심히 씻는 등의 개인위생에 어느 때보다 신경을 쓰면서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가짜뉴스를 만들어 전파한다든지 하는 일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거대야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굳이 ‘우한 폐렴’이란 용어로 부르기를 고집하는 일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상 국제적인 명칭을 거부하고 굳이 이런 용어를 쓰는 것은 전염병과 같은 문제마저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0년대 들어서만 여섯 번째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감염병균에 의한 심각한 사태가 갈수록 빈발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제적인 협력도 어느 때보다 긴밀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더 나쁜 건 공포증을 불러오는 혐오 바이러스일 것이다. 혐오 바이러스는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한센병 환자들을 어떤 편견도 없이 인간적으로 대했던 소록도의 두 수녀님들처럼, 그리고 혐오를 조장하는 언론과 정치세력에 맞서 중국 우한 지역의 교민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아산, 진천 주민들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혐한 시위대에 맞서는 연대행동을 통해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 방지법과 조례를 제정한 일본 시민들처럼 연대가 더욱 절실할 때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교민들을 응원하고, ‘힘내라 우한, 힘내라 중국’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이런 응원을 받은 중국 시민들은 훗날까지 한국인들의 응원을 기억할 것이다. 혐오가 아닌 연대가 이 국제적 비상사태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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