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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에서 1666년은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던 해였다. 런던 인구의 4분의 1이 전염병으로 죽어 나간 절망의 해였다. 23세 청년 뉴턴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깨달은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했다. 

뉴턴은 질량을 가진 두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원리를 수식으로 표현해냈다. 이제 지구상의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동일한 보편 원리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갈릴레오는 피사의사탑에서 무거운 공이 가벼운 공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실험으로 뒤집었지만, 이제 뉴턴은 갈릴레오의 관찰이 필연임을 증명할 수 있게 됐다. 

천체의 운동을 다루려니 가장 큰 문제가 수학적 도구의 부족이었다. 이때까지의 수학은 정적이어서 ‘움직이는 세계’를 다루기에 적절하지 못했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한계를 통감한 이 청년은 결국 천체의 운동을 다루기 위해 미분과 적분의 개념을 창안해냈다. 인류 역사에 ‘동적 세계관의 출현’이라고 기록될 만한 대사건이다.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뉴턴은 국가 재난 사태에 따른 휴교령으로 고향에서 지내게 됐다. 평범한 젊은이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휴식의 한 해가 문명사를 바꾼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관찰하는 ‘낮과 밤’ ‘월식과 일식’ ‘계절의 변화’를 뉴턴의 이론은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 문제들이 지속해서 나타났다. 다자관계의 복잡함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단둘만 있는 양자관계의 단순함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태양과 행성 하나만 있다면 행성의 경로는 타원이어야 하지만, 행성이 여럿 있다 보니 자기들끼리 끌어당기는 힘까지 생겨서 완벽한 타원을 망가트린다. 태양과 지구와 달의 삼각관계도 비슷해서 양자관계의 단순함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18세기의 수학자인 라그랑주가 수학적 천재성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눈에 보이는 달의 모습이 변화하는 것도, 지구의 자전축이 흔들리는 것도, 춘분점이 조금씩 바뀌는 것도 그는 뉴턴의 이론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사후 설명하는 것만 가지고 방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 과학을 후원하기는 힘들다. 경험하고 관찰한 사실을 명쾌하게 설명하니 참 용하다 싶지만, 그래봤자 이미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현상 아닌가. 우리가 아직 모르는 일을 미리 알게 해주는 힘이야말로 마법 같은 일 아닌가. 

물론 뉴턴의 이론은 예언의 힘도 가졌음이 입증됐다. 18세기에 인류는 천왕성까지 7개의 행성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바깥쪽에 있는 천왕성의 움직임에 설명할 수 없는 변이가 관측됐다. 그래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행성이 천왕성 밖에 있을 거라는 가설이 생겨났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천문학자인 애덤스와 르베리에는 관찰된 불규칙성을 토대로 가상의 행성의 궤도를 계산했다. 그들이 맞는다면, 수학적으로 계산된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그 행성은 나타나야 한다. 망원경으로 무장한 관찰자들은 이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해왕성을 발견한 것이다. 무작위적인 관찰이 아닌, ‘기획된 발견’이었다. 끝없는 모래사장에서 특정한 돌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위치를 미리 알고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예언에 가까운 이런 일은 이제 일상에 가깝다. 수백년 전에 나타난 핼리혜성의 출현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 우리는 다음번 출현 시기를 ‘예언’할 수 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해, 얼마만큼의 연료를 탑재하고 어떤 속도로 출발시켜야 하는지 우리는 미리 안다. 

과학적 이론의 힘은 단지 현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언의 힘으로 미지의 세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수학적 필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해왕성의 발견은, 관측 기술의 진보 때문이 아닌, 수학적 필연의 결과였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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