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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컨벤션센터를 개조해 만든 임시병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들이 수용돼 있다. 우한 _ AP연합뉴스

“한국보다 확진자 수가 더 많대!” “내 그럴 줄 알았다. 싹 쓸어버렸으면 좋겠다.”

카페 옆자리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이웃 나라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디서도 “안됐다”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독일어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하면 ‘해로운 기쁨’, 뉘앙스를 살리면 ‘사악한 즐거움’이다. 타인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즐거워하는 심술궂은 마음을 뜻한다. 길 가다 바나나 껍질을 밟아 크게 넘어지는 사람을 보고 웃는 것도 샤덴프로이데다. 경쟁 팀의 선수가 부상을 입었을 때 잘됐다는 마음이 드는 것,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곤경에 처했을 때 고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샤덴프로이데다. 가까운 사이에도 이런 감정은 존재한다.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가 대기업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씁쓸함, 그러다 몇 년째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겉으로는 표를 내지 않아도 속으로 은밀하게 친구의 불행을 기뻐할 수도 있다.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지닌 가장 악한 감정이 샤덴프로이데라고 했다. 어릴 적엔 친구가 웃으면 같이 웃고, 울면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따라 울었는데, 그때는 몰랐던 이 사악한 즐거움을 우리는 어쩌다 습득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경쟁의식 때문일 것이다. 한국 교육의 동력이자 메커니즘인 경쟁은 친구가 잘해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졸업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동창과, 입사동기와, 이웃과, 본 적도 없는 엄마 친구 자식과 비교하며 나의 우위를 찾는다. 나와 남을, 우리와 그들을 가른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슬퍼하기보다 무탈한 나의 현재에 안도하며 비교우위를 즐긴다. 세상이 온통 제로섬인 것처럼 누군가 잘되면 내가 뒤처지는 것 같고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면 불행의 할당량이 나를 비켜가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내가 속한 또는 내가 지지하는 우리 그룹에 나쁜 일이 생긴다면 걱정하고 슬퍼하겠지만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는 불행이 닥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만 괜찮으면 상관없다.

무서운 것은 샤덴프로이데가 전염된다는 점이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느꼈더라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던 감정이 남이 표현하는 것을 보면 대범해진다. 익명을 보장받으면 잔인해진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기를 바라게 되기까지 한다. 소리 없이 퍼지는 샤덴프로이데는 악성 바이러스만큼이나 전염력이 강하고 위험하다.

유명인이 갑작스레 나쁜 일을 당했을 때 동정하는 이도 있지만 당해 마땅하다는 조롱도 많다. 대중이 보기에 별 노력 없이 성공을 거뒀거나 부정한 방법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한 경우라면 샤덴프로이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악한 즐거움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름의 정의라는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행운, 잘나가는 이가 누리는 권력이 내 눈에는 불평등이다. 그런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는 것은 정의, 즉 공정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불행을 당해 마땅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와 ‘그들’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우리’의 범위는 늘기보다는 줄어들기가 쉽다. 종국에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그들’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어서 나 혼자 잘한다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저 멀리서 나타난 바이러스가 금세 전 세계에 번진 것처럼, 명절에 가족과 밥을 먹다가 감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남의 불행을 고소하다고 여기지 말자. 내가 안녕하려면 남도 안녕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가 우리인, 금을 그어 나와 남을 나눌 수 없는 세상이다. 나 혼자 잘 사는 세상은 없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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