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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를 들으며 거닐었던 런던을 떠나 지금은 내 집 내 골목. 폭염주의보를 알리는 새벽 문자는 간신히 잠든 새벽잠을 폭망하게 만드네. 낮에는 갑자기 비구름이 달려들어 낙뢰가 치고, 깜박 졸던 나를 깨우던 무서운 물리 선생님. 피뢰침이 있던 교회에 얹혀 살 때는 두꺼비집이 여간해선 내려가지 않았는데, 마을 속 한데 섞여 살게 된 이 집은 약한 벼락에도 걸핏하면 차단기가 내려간다. 집을 비우고 타지에 머물 땐 든든히 장만한 김치와 간고등어를 못 먹고 버리기도 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벌은 왜 냉장고가 받는 걸까. 벼락이 치면 개들도 깜짝 놀라 칭얼거린다. 컹컹대고 짖는 하늘을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 보위가 쓴 노래 ‘모든 멋진 놈들(All the young Dudes)’이란 노래도 벼락만큼 큰 소리로 세상에 울려 퍼졌다. “형은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를 듣고서 집에 왔다네. 하지만 나는 그런 혁명에 빠져들 수는 없었다네. 유들유들하고 거추장스러워. 지루한 것은 딱 질색이야. 깨부숴야 할 이 세상이 콘크리트인지 내 머릿속이 콘크리트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는걸.” 이런 노랠 듣고 자란다면 벼락 따위 무서운 소리도 아니겠다.
수평으로 이동하며 살던 사람이 수직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 벼락이 치는 순간 아마도 그런 생각이 번쩍 든 것은 아닐까. 인류는 농사법과 가축, 발효 음식을 얻게 되자 유목 생활을 접게 된다. 문화철학자 토마스 마호는 인간이 근원에 대한 공간적 생각 대신 수직적 사고를 하게 되자 이성의 존재로 진화했다고 말한다. 내가 누구로부터 태어났는지, 언제 태어났는지. 여권이나 각종 증명서에 지금도 우리는 그 질문에 답을 하고, 그걸 인간의 정체성으로 삼고 살아간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나 고민하다가 어머니 자궁을 점토로 빚기도 하고, 예수처럼 신을 가리켜 아버지라 부르기도 하고. 고요는 좋으나 늘 고요하면 나태하고 머무르게만 된다. 나른한 날들을 깨우는 벼락에게 우리 심심한 감사를 표해야 하지 않을까. 무섭게 밀치고 후비다가도 어느덧 단비를 몰고 오는 사랑스러운 밀어. 때론 그 속에 날벼락 같은 슬픈 소식이 살짝 끼어 있기도 해. 정말 그런 일들은 그대 인생에선 멀찌감치 비켜가기를….
임의진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