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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 어디 가?” “고향 가야죠.” 회사 휴게실에 모여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추석 얘기가 나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명절에 대한 부담과 걱정이 쏟아져 나왔다. 교통체증 때문에 받을 스트레스는 소소한 근심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결혼부터 노부모의 건강에 이르기까지 부담과 걱정의 스펙트럼은 넓었다. 연휴라는 말은 설레지만 명절이라는 말은 무섭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회사라는 공간의 특성상,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다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다가올 명절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한가위인데,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행복해야 마땅한데 마음이 겨울을 향해 벌써부터 얼어붙기 시작한 것 같았다. “저는 이번에 여행 가려고요, 태국으로.” 그의 말 덕분에 싸늘한 분위기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모두들 선망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리만족이라도 해야 오늘을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명절 기간에 맞춰 해외출장을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친구에게 들었다. 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웃음의 끝은 처량했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즐겁기만 한 것이 명절이었는데, 어쩌다 우린 명절을 이렇게까지 기피하게 됐을까. 나의 경우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사춘기라 예민해서 친가에 가기 싫어한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 무렵, 날카로운 질문과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가 무방비 상태의 내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공부는 잘하니, 작은집의 누구는 수학경시대회에 나가서 금상을 타 왔는데…, 전주에서 암만 잘해봐야 서울에선 명함도 못 내밀어,꿈이 뭐니, 꿈을 더 크게 가져야 해, 사촌동생들의 귀감이 되어야 해, 문과에 갈 거니 이과에 갈 거니, 우리 집안에도 법조인이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겠니…. 애정 어린 간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겐 저 상황이 상당히 폭력적이었다. 방어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에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좀 잦아드나 싶었는데 오산이었다. 군대, 취업, 결혼이 뒤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그것들은 일종의 규격이었다. 그 나이 때에는 으레 그렇게 해야 하는 관행과도 같은 것이었다. 규격을 언급할 때는 으레 “남들 다 하는”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남들 다 하는 공부를 왜 안 하니”나 “남들 다 하는 연애를 왜 못하니”처럼 안 한 것과 못한 것에 대한 책망이 이어졌다. 어른들 말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갔어야 했고 남들 다 하는 취직을 했어야 했다. 그것이 ‘번듯한’ 것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남들 다 하는 내집 마련을 해야 하고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결혼과 취직을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출산과 승진이라는 과업 또한 달성해야 한다. 규격은 생각지도 못한 짐이 되어 사람들을 내리누른다. 남들과 같아지라는 주문 때문에 공교롭게도 남이 되는 기분을 갖게 만든다.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고 보통이라는 규격에 들어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말하는 ‘남들’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지난 설에는 나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남들 누구요? 남들이 ‘다’ 하는 건 아닌데요?” 일순 정적이 흘렀다.
비단 명절 때뿐만이 아니다. ‘보통’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규격은 시시로 폭력을 행사한다. 삶은 단 한 번뿐인데, “남들 다 하는” 것을 해야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강요받기 일쑤다.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해, 역설적으로 나 자신을 지워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위해 꿈을 접어야 한다. 보통이라는 규격이 지니는 위험성이 바로 그것이다. “남들 다 하는” 것들을 똑같이 할 때, 남들과 달라질 권리는 없어진다. 보통이라는 규격에 맞춰 사는 바람에 정작 자기만 할 수 있는 일을 놓칠 수도 있다.
보통이라는 규격은 지금껏 무수한 ‘다움’을 만들어냈다. 남자다움, 여자다움, 아이다움, 어른다움…. 죽을 때까지 다움은 그치지 않는다. 졸시 ‘다움’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다움 안에는/ 내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남들 다 하는” 대로 살 때, 나 자신은 점점 희미해지고 나를 둘러싼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유년 시절의 염원은 결국 보통 사람이 되는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으므로, 다음을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남부럽지 않은 인생일지라도 다음이 없는 삶, 내일이 없는 삶, 나 자신이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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