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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이 영면하셨다. 그는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가 캡사이신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경고방송이나 예비 분사도 없이, 규정을 훨씬 웃도는 10기압 이상의 물대포가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러나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지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사과 한마디 없었다. 이와 같은 무대응은 이 정권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물론 기민하게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적절한 수사는 진척되지 않되, 은폐 움직임은 기가 막히게 빠르다. 백남기 농민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찰 3개 중대 250여 명이 병원 앞을 가로막았다. 경찰에서는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지만, 백남기 대책위 측에서는 ‘부검 시도’ 때문일 것이라 추측했다. 부검은 ‘명명백백한 진실=과잉진압이 국민을 죽였다’를 가리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야말로 국가에 의한 국민 살해가 진행되는 와중에 대통령은 장차관들에게 “내수 진작을 위해 골프를 치라”고 주문했다고 전해지고, 여당 당수는 국회의장을 끌어내리겠다며 단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느낄 그 허기야말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수치스러운 허기다. 국민을 대의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왜 민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가? 사드 배치, 지진의 공포, 그리고 계속되는 국민의 죽음 속에서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의 집권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가습기 살균제 살인 사건이 진행 중이며,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않은 노동조건 때문에 사고사를 당했다. 그리고 이 정권이 결정한 노후 원전 가동 연장 및 추가 원전 건설 계획은 대형 재난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중 어떤 문제에도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제는 매일 40명에 달하는 국민이 자살을 선택한다. 사회학자 노명우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에서 말한다.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 찾기는 국가와 정책입안자의 몫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만약 이들이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자살 방조죄로 기소되어야 하며, 또한 그들을 기소하지 않는 사회는 범인 은닉죄로 고발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일찍이 ‘테러 근절’을 선포했으나, 그가 염려했던 그 어떤 테러보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정부의 폭력과 무능, 살인 방조 속에서 생명을 잃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테러인가, 아니면 이 정권의 의도적인 오작동과 비열함인가.

내년이면 30주년이다. 1987년의 뜨거운 광장이 제도적 민주주의를 이 사회에 가져다준 그 시간으로부터 우리는 30년을 걸어왔다. 그렇게 열린 87년 체제는 명백한 한계를 담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페미니즘, 생태주의, 퀴어 액티비즘, 장애인권운동 등 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역시 87년 민주 항쟁의 수혜 속에서 꽃필 수 있었다. 제도적 민주화와 시장 자유화가 모든 것의 답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다가오는 민주주의 앞에 울퉁불퉁한 길을 닦아준 것만은 사실이다.

지난 10년은 1987년 대한민국 국민이 목숨을 걸고 쟁취했던 그 ‘한 줌’의 민주주의마저 퇴행시키는 시간이었다. 87년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는 201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적대로 하는 싸움이기 이전에, 이 땅에서 정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 의미를 둘러싼 싸움이다.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부도덕하고 무능하게 국정을 운영해도 또 집권할 수 있더라”라는 메시지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맹목적인 목표로서 정권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지난 10년의 정권이 특히 흉포했을 뿐, 국가가 국민의 목숨을 우습게 여긴 것이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고, 특정한 정권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치열한 정치의 결과로서 획득하는 정권교체다. 징벌적 차원에서의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나름의 최선을 선택할 수 있는 대선을 우리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단위에서 사회의 형질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들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한 손에는 투표권을, 다른 한 손에는 선결과제 요구와 정책 제안을 들고, 그렇게 우리는 정치세력화해야 한다.

87년 민주항쟁 30주년을, 그에 걸맞은 방식으로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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