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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던 시절부터 아무개는 소금을 캐러 다녔다. 서쪽 하늘에 초승달이 보이는 시기에 길을 떠나, 야크들을 몰고 잿빛 땅뿐인 세상을 가로질렀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나타날 즈음이면 긴 여정이 끝났다. 호수를 뒤덮은 신의 은총이 달빛에 하얗게 반짝이는 것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두 번째 소금 길에서는 먼저 호수로 출발하여 자루 100개에 소금을 채워둘 네 사람으로 뽑혔다. 짐승을 돌보며 뒤따르는 일은 노련한 어른들이 맡았다. 

선발대가 떠나기 전날 밤, 마을의 촌장이 힘 좋고 걸음 빠른 네 젊은이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반짝이는 하얀 조각을 하나씩 입에 넣어 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맛, 가라앉지 않는 허기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맛이었다.

- 보리를 소금으로 바꿔 간 이에게 얻은 설탕이다. 신이 우리에게 소금호수라는 은총을 베풀었듯, 산 아래 사람들에게 설탕호수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 뒤 여섯 차례 소금 자루를 채우러 갔으나, 다시는 설탕을 맛보지 못했다. 일곱 번째는 야크 등에 소금을 싣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설산을 넘고 벼랑 길을 따라가는 보름 동안, 아무개의 혀는 설탕을 갈망했다. 동행들이 보리값을 흥정하는 사이 소금 한 자루를 짊어지고 홀로 설탕호수를 찾아 떠났다.

초록이 무성한 세상에는 설탕호수를 아는 이가 없었다. 물고기가 뛰는 호숫가에서 만난 노인은 남쪽 끝까지 걸어가면 설탕의 길이 보일 것이라 했다. 노인의 말을 따라 걷다가 마침내 끝이 보이지 않는 검푸른 바다에 이르렀다. 아무개는 신이 바다에도 은총을 내려주었음을 알게 되었으나, 설탕의 섬으로 가는 배에 올라탔을 때도 여전히 소금 짐을 지고 있었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질문의 집’으로 불려갔다. 설탕처럼 하얀 사람이 물었다.

- 설탕이 더 아름다운가, 소금이 더 아름다운가?

- 저는 신의 은총인 소금 한 자루와 설탕 한 자루를 바꾸러 왔습니다.

- 차에 소금을 넣어 마시는 야만인이여, 대답하라.

아무개는 사방에 잿빛 땅덩어리뿐 야크가 먹을 풀조차 찾기 힘든 고향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소금호수를 중심으로 몸을 움직인 만큼 겨우 먹고살 수 있었으나, 태어난 곳을 떠나지 않았다. 설탕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신의 은총보다 더 아름다울까. 그러나 설탕의 달콤함에 저항할 수 있을까.

하얀 사람은 아무개를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은식기와 하얀 도자기 그릇에 담긴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있었다. 아무개는 반짝이는 설탕 조각품들을 구경하며 설탕을 넣은 차와 설탕을 넣은 고깃국을 먹었다. 입에 맞지 않았다. 고향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설탕 한 자루를 받았다.

항구로 돌아가다가 아무개는 길을 잃었다. 주위에는 키 큰 풀뿐이었다. 사탕수수라 했다. 볕에 그을린 남자들이 풀을 베어내면 여자와 아이들이 단으로 묶어 날랐다. 말을 탄 사람이 채찍을 휘두르며 돌아다녔다. 수숫단을 따라가니 공장이었다.

사탕수수를 으깨는 기계와 흘러나오는 즙을 가열하는 거대한 솥 사이에서, ‘사람들은 단 한순간의 평화도 휴식도 없이 바삐 일하면서 신음하고 있었다.’1) 

설탕은 호수가 아니라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원래는 하얗지 않고, 갈색의 거품이 떠다니는 검은 물이었다. 희고 반짝이는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 ‘사람들이 수숫단을 기계에 밀어 넣다가 팔이 잘리고, 졸다가 펄펄 끓는 솥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이곳이 바로 지옥이었다.’2)

밖으로 뛰쳐나갔다. 목에 쇠사슬을 채운 사람이 뙤약볕 아래 서 있었다. 아무개는 설탕 자루를 내던지고 바닷가를 향해 달렸다. 머리에 이고 있는 소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배에 올라타기 전, 설탕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이들과 죽기 직전까지 일하는 이들이 함께 사는 세상을 뒤돌아보았다. 땀과 신의 은총으로 뒤범벅이 된 아무개는 소금기둥이 된 것처럼 보였다.

1) 2) ‘설탕, 세계를 바꾸다’, 마크 애론슨·마리나 부드호스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연재 | 부희령의 이야기의 발견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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