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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불법 정치자금 제공 명단인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검찰이 정식 수사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새누리당·청와대·정부 요직을 역임했거나 맡고 있는 권력의 실세들이 한꺼번에 ‘검은 돈 의혹’에 휩싸인 전대미문의 사건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성 전 회장의 경향신문 인터뷰와 마지막 ‘메모지’ 등을 통해 정권의 실세들이 거액을 건네받은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공소시효’ ‘증거능력’ 등을 내세워 미온적 태도를 보이던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전면 수사에 나선 데는 더 이상 국민적 의혹과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 터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마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성역없는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듯이 이번 사건의 진실을 철저히 밝히는 것은 달리 피해 갈 수 없는 과제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대부분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나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에게 건넨 자금이 실은 ‘박근혜 후보 측’에 전달한 것이었음을 곳곳에서 내비치고 있다. 2007년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제공한 7억원은 ‘경선자금’이라고 했다. 특히 성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던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자금의 용처에 대해선 “대통령 선거에 썼지”라고 말했고, 공식 회계처리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불법 대선자금으로 쓰였다는 증언이다. 조직총괄본부장은 시·도별 당조직과 외곽 조직을 관리하며 자금을 많이 쓰는 자리였다. 성 전 회장의 ‘메모지’에 적힌 유정복 인천시장은 당시 직능본부장, 서병수 부산시장은 선거자금을 통괄하는 당무조정본부장을 맡았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들 3명이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조직·자금을 다루는 요직에 있었던 셈이다. 성 전 회장이 남긴 정치자금 제공 리스트가 2012년 대선자금과 연관될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 자체로도 정권의 도덕성이 걸렸지만, 대선자금은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다. 검찰이 과연 ‘살아 있는 권력’의 심부를 겨냥하는 대선자금 의혹을 제대로 손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일 검찰 수사가 ‘살아 있는 권력’에 주춤거리거나 관련 의혹을 덮는 쪽으로 간다면 정권은 더욱 나락으로 내몰리고, 검찰도 ‘권력의 시녀’란 딱지를 떼지 못할 것이다.

2012년 12월20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캠프 해단식에서 인사하는 모습을 성완종 경남기업전회장이 지켜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성완종 리스트’는 대상 인물들이 대부분 박 대통령의 최측근들이고, 대선 및 경선 자금과 연관된 의혹이라는 점에서 대통령과 직결된 사안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검찰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 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건다는 각오로, 드러난 의혹들을 한 점도 남김 없이 규명할 수 있도록 검찰의 공명정대한 수사를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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