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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완구 전 총리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금품 공여자가 죽기 직전 남긴 녹취록에 부합하는 다수 증언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 전 총리의 해명에 무게를 둔 판결이라는 점에서는 유감이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2013년 4월 재·보궐선거 당시 이 전 총리가 충남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음을 입증할 직접적인 유죄의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3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완구 전 총리가 27일 오전 2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이 전 총리는 유죄를 인정한 1심과 달리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금품을 공여했다는 성완종의 사망 전 인터뷰가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정근 기자

성 전 회장이 지난해 4월 자살하기 직전 기자와 나눈 통화 녹취록에서 3000만원을 전달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자살 당시 자원외교비리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자신을 이런 처지로 몰아간 배후가 이 전 총리라고 판단해 이 전 총리에 대해 배신과 분노의 감정을 갖고 허위진술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의 뇌물죄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죄의 경우 돈을 주고받은 사람의 감정이 틀어진 상태에서 비리 제보나 증언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판부는 금품 공여시점을 ‘지난번 재·보궐선거 때’로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한 점도 지적했으나 2년 정도 지난 시점에 정확하게 날짜를 특정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다. 무엇보다 경남기업 부사장, 수행비서 2명, 운전사가 성 전 회장의 금품 전달 사실에 부합하는 구체적 증언을 했음에도 녹취의 증거능력을 배척했다.

엄격한 증거채택 기준이 필요하다 해도 당사자 간에 은밀히 금품이 오고 가는 범죄의 특성을 재판부가 무시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심지어 이 전 총리의 전직 운전사와 자원봉사자까지 ‘성 전 회장의 수행원을 선거사무소에서 봤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을 선거사무소에서 만나지 않았다’고 주장한 이 전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성완종 리스트’가 처음 공개됐을 때 이 전 총리가 다그치듯 ‘성 회장이 죽기 전에 어떤 말을 했느냐’는 전화를 수차례 걸어왔다는 복수의 증언 역시 유죄의 증거가 되지는 못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금품전달 장면이 담긴 동영상 등 직접 증거가 없는 경우 유죄를 입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죄선고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지 결백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법원에서는 2심이 남긴 의문점들이 해소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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