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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KT는 케이뱅크 대주주가 될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같은 날 정부는 ‘10대 산업분야 65개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첫번째 과제는 개인정보 활용 활성화였다. 사상·신념, 정치적 견해, 민감한 의료데이터 등 개인정보를 가명정보로 처리할 경우 기업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규제완화 명분으로 코로나19 대응 및 경제활력 제고를 내세웠다. 전례없는 재난 극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지만, 자칫 시민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판마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인터넷은행법 개정은 누가 봐도 KT에 대한 특혜이다. 대주주 자격기준은 모든 금융회사에 공통으로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이 법은 혁신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확대를 위해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한 것도 모자라 인터넷은행만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이 있어도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자격기준을 완화했다. 어떤 이유로도 수긍하기 어렵다. 개인정보 활용 확대는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다. 가명정보는 누군지 알 수 없도록 삭제·대체 처리된 정보다. 하지만 추가정보나 여러 가명정보가 결합되면 사람 특정이 가능해진다. 국민의 사생활 침해가 불 보듯 뻔하다.
문제는 이런 식의 규제완화가 한두 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율·세부담 상한을 높여 집값 안정과 조세정의 실현을 목표로 추진됐던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은 ‘실수요자 세부담 완화’ 주장에 밀려 20대 국회 처리가 어려워졌다. 여당 내에서 무기명채권 허용 주장도 나왔다. 국가채무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지만 이는 상속·증여세 회피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명백한 부자감세 방안이다. 원격의료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수단에 머물러야 하는데, 시장에선 의료민영화 추진으로 받아들인다. 경영계는 ‘쉬운 해고’ ‘주 52시간제 완화’ ‘법인·상속세 인하’ 등 반사회적·반노동적 요구를 대놓고 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꺼내든 ‘한국판 뉴딜’ 역시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자리 깔기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잘못된 규제는 경제를 위해서나 기업·국민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풀어야 한다. 그런데 필요한 규제까지 풀 경우, 피해는 크고 그 부담은 국민들이 지게 된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국민 기본권과 안전판, 법 정의까지 무너뜨리는 규제 풀기를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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