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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전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서울 한복판에 모였다. 나들이가 아니다. 이주노동자 대책을 촉구하고자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날 ‘2019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는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네팔,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등 1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이들은 더 이상 노예노동을 감수할 수 없다며 산업재해로 죽어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다. 외국인에게도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당당한 외침이다. 

민주노총·이주공동행동·이주노동자노동조합 등 9개 시민단체가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전국이주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석우 기자

이주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소식은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지난 7월 이후만 꼽아도 삼척 승합차 전복사고, 목동 빗물펌프장 사고, 영덕 오징어젓갈공장 지하탱크 질식사고, 속초 아파트건설현장 추락사고 등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최근 5년간 산재사망 이주노동자는 모두 557명. 한 달에 8명꼴이지만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주목할 점은 전체 산업재해율이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주노동자 산재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력난을 겪는 3D 업종의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떠안으면서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처우는 최하위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임금체불, 갑질 등에 시달리면서도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고용허가제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고용허가제는 인력이 부족한 제조업·농업·어업 분야에 해외 노동력을 원활히 공급하려는 취지로 2004년 도입됐다. 그러나 사업장을 옮길 때에 원칙적으로 사업주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인권 침해 요소가 적지 않다. 사업장이 위험해도 자유롭게 직장을 옮길 수 없다. 사업주에게 안정적인 노동력을 공급하려는 제도의 취지가 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국제노동기구(ILO)조차 문제를 지적한 사항이다. 시행 15년이 된 노동허가제는 이제 개선할 때가 됐다. 

국내 이주노동자는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한 축이다. 이미 100만명이 넘었고 매년 10만명 안팎의 신규 노동자가 유입된다. 이주노동자도 인격과 노동권이 존중돼야 한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적·인종·종교에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더 이상 이주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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