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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0만달러 수수 의혹과 관련해 말을 바꿨다. 김 전 실장은 경향신문이 “2006년 9월 김 전 실장에게 10만달러를 전달했다”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인터뷰를 보도한 뒤 의혹을 전면 부인해왔다. 특히 “(2013년 8월5일) 비서실장이 된 이후 성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의 일정표를 근거로 “2013년 11월6일 한정식집에서 만찬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해명을 번복했다. “착각한 것 같다. 다시 기억을 되살리고, 가지고 있는 자료를 보니까 기억이 난다”며 성 전 회장과 만난 사실을 시인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말 바꾸기로 논란이 된 터에 김 전 실장도 거짓 해명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성완종 리스트’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형국이다.

김 전 실장이 어떤 인물인가. 청와대 재직 중 ‘기춘대원군’으로 불릴 만큼 실세 중 실세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드물게 보는, 사심이 없는 분”이라며 공개적으로 감싸기도 했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 단독 인터뷰에서 “김 전 실장이 VIP(박 대통령) 모시고 벨기에·독일 갈 때 10만불, 달러로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항공료와 체재비를 초청자가 부담해 돈 쓸 일이 별로 없었다”며 금품수수 의혹을 부인해왔다. 그러나 그가 기초적인 사실관계부터 거짓말을 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한 해명도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방문 비용을 어떤 인사가, 얼마만큼 부담했는지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굳은 표정의 김기춘 실장 (출처 : 경향DB)


앞서 이 총리도 거듭된 말 바꾸기로 논란을 증폭시켜왔다. ‘성완종 메모’에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자 “성 전 회장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에서 추궁이 계속되자 “개인적으로 만났다”고 실토했다. 성 전 회장이 2013년 4월4일 충남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3000만원을 전달했다는 경향신문 보도를 두고도 “성 전 회장이 다녀간 건 기억 못한다” “의미 있는 날이라 인사는 했지만, 독대는 정황상 맞지 않다” “(독대했는지) 알아보는 중”이라고 수차례 말을 바꿔 질타를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사들은 모두 전·현직 고위 공직자이다. 금품수수 의혹의 실체적 진실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리라 본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어떻게든 위기만 모면하려는 비겁한 처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왜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일삼아 스스로 신뢰를 깎아 먹는가.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은 떳떳하게 진실을 밝히는 게 그나마 남은 명예를 지키는 길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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