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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의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믿을 만한 증언이 있었고 불법 자금 수수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러 사람의 목격담도 나왔다. 검찰은 그의 계좌를 추적 중이고,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그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그가 내각의 지휘자로서 또한 부패 척결의 사령탑으로서 도덕적, 정치적 권위를 행사하기는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패 척결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고, 이 총리 역시 자기 최우선 임무를 부패 척결로 천명한 조건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총리는 총리로서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정당성, 정치적 권위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거듭 “국정이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 국정을 챙기겠다”면서 총리직 고수 의사를 표시했다. 그는 자신이 총리 자리를 하루라도 더 지키고 있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정당성을 상실한 내각의 지휘자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어제 그가 4·19혁명 유공자와 유가족들이 참석한 4·19혁명 기념식에서 정부를 대표해 기념사를 했을 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19일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55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기 위해 발언대로 가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는 기념사에서 “부정과 불의에 맞선” 민주 영령과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거론했다. 그때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된다. “국가의 품격” “세계 속에서 당당한 선진사회”를 말할 때는 이중성, 모순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그런데 지난해 4·19혁명 기념사의 한 문장이 이번 기념사에는 빠졌다. “정부는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이다. 최근 정부가 부패 척결 의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의아한 일이다. 아마 이 총리가 자신의 처지를 의식한 결과였을 것이다. 설사 그걸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부패 척결을 주장했다 해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가 부패 척결을 주장해도, 주장하지 않아도 어색하다.

그의 기념사가 의미 없는 말의 잔치처럼 느껴지는 건 표현이 진부해서라기보다 기념사의 내용과 기념사를 하는 주체 간의 부조화 때문이다. 누구를 가르치는 듯한 그의 말을 듣는 일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언제까지 시민에게 이런 불편함을 강요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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