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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을
하다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라도 생활지원금 등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로부터 손해를 배상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유신헌법 반대 성명을 발표한 뒤 불법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한 ‘문인 간첩단’ 사건 피해자와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 같은 취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은 민주화운동보상법 조항을 근거로 “원고들이 보상금
지급에 동의한 이상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생기므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판결을 요약하면, 가혹행위로 거짓 자백을 강요당해 간첩 누명을 쓴 사람들에게 1000만원 안팎의 생활지원금을 줬으니 위자료는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판결이다. 굳이 법률가가 아니더라도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과
인도적·호의적 차원의 ‘손실보상’이 다른 개념이라는 건 시민적 상식에 속한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도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불법행위에 대한) 정신적 손해에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판결은 과거사 청산 작업의 취지에 역행한다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크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 5인은 재심으로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해주고도 상응하는 배상을 하지 않는 것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기본법’ 등의 입법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마지막까지 저항한 옛 도청사를 부수지 않고 만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민주화운동보상법 18조 2항을 대법원이 판단 근거로 들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국가배상청구권을 제한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하급심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재에 심사를 요청해 놓았는데, 대법원이 그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판단한
셈이다. 대법원과 헌재가 ‘최고 사법기관’의 위상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온 것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기관 간
자존심 다툼으로 무고한 시민이 피해를 입어서야 되겠는가.
대법원은 2013년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가능기간을 과거사위 결정 후 3년에서 6개월로 대폭 단축했다. 지난해에는
‘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를 적용한 수사·재판은 그 자체로는 불법행위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대법원의 거듭된 ‘과거사
역주행’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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