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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일찌감치 화두로 내건 ‘경제민주화’가 대선 90여일을 앞두고도 실질적 진전 없이 구호로만 겉도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이 엊그제 발표한 국민행복추진위 구성과 인선 내용이 이를 웅변한다. 여당 내 경제민주화 논의를 주도해온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한계를 실토하고 나설 정도다.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신념을 갖고 추진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품게 하는 대목이다.
새누리 국민행복추진위 본격가동
(경향신문DB)
박 후보의 대선 공약을 총괄할 행복추진위는 단장급만 19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이다. 박 후보는 지난달 20일 당내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된 뒤 “(위원회에) 경제민주화와 복지, 일자리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 전문가와 국민대표로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행복추진위 인선에서 새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추진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추진단장은 김 위원장이 겸하기로 했다.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박 후보의 싱크탱크로 보수색 짙은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8명이 대거 자리를 차지했다. 당내 소장파들이 중심인 ‘경제민주화 실천 모임’ 의원들 중에는 단 한 명도 발탁이 안됐다. 그간 여당 내 경제민주화 논전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놀라운 얘기가 아니다.
여러 관측들이 나오지만 그 배경에는 박 후보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자신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내세운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치를 세운다) 공약이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자 ‘둘은 같다’는 입장을 내놨다. 감세는 세율을 낮추자는 것인데 현 정부에서는 중산층과 저소득층 대상으로 실현했고, ‘푸’와 ‘세’는 규제는 풀고 법치를 세운다는 것인데 (지금도) 유효하다는 주장이다. 심한 왜곡이다. ‘줄’은 대기업의 법인세 인하이고, ‘푸’는 대기업에 불리한 규제 완화이며, ‘세’는 파업 엄벌을 비롯한 노동조합 길들이기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이는 다 안다. 박 후보가 아무리 입으로 경제민주화를 외쳐도 당이 시늉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것 같다.
박 후보는 진보·개혁 진영의 전유물이나 다름 없던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상품으로 내세우는 데 성공했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이미지 변신 시도는 지난 4·11 총선 승리의 발판이 됐으며 대선 국면에서도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지리멸렬한 민주당의 무능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크지만 박 후보의 ‘변신’도 한몫을 한 건 사실이다. 민생에 도움이 된다면 진보가 보수를, 보수가 진보를 벤치마킹하는 세계사적 흐름을 감안할 때 박 후보의 변신은 소망스럽고 장려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구호만 베끼고 실천을 뒷전으로 미룬다면 정책의 혼란만 자초할 뿐이다. 여야가 합창하는 경제민주화라면 이제 구호를 넘어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단계로 진화하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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